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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 돌아갈 집이 생기다

아르헨티나- 후후이

by 소울메이트

아르헨티나에서도 카우치서핑은 어김없이 이어졌다. 파타고니아를 제외하고는 머물렀던 모든 도시에서 카우치서핑으로 숙박을 했다. 우리의 첫 아르헨티나 키우치서핑은 후후이의 '루이스' 할아버지 댁이었다.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막 국경을 넘었을 때


아르헨티나의 마스코트라고도 할 수 있는 축구선수 메시가 그려진 벽화


연세가 지긋하신 루이스 할아버지는 후후이 지역에서도 인적이 드문 언저리에 살고 계셨다. 꽃나무로 둘러싸인 넓은 정원이 딸린 고요하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대문 앞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렸고 그 순간 우리는 기절할 뻔 했다. 열린 문으로 우릴 반겨준 건 '왈왈왈'도 아니고 '컹컹컹' 짖어 대는 다섯 마리의 커다란 개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이쿠! 엄마얏!"

몸집이 나보다도 크려고 하는 데다 날카로운 맹수의 이빨을 가진 개들이 한꺼번에 우리에게 달려드는데 정신이 다 혼미해졌다. 그 땐 정말이지 공포에 질려 '아 그냥 도망쳐서 아무 호텔에서나 잘까'하는 충동이 머릿속을 스쳤다.

놀랍게도 그 컹컹대며 짖는 소리는 반가움의 표시였다. 거친 발톱을 세우며 달려 들었던 건 공격이 아니라 안기려는 것이었고.. 알고 보면 살가운 친구들이었다. 이 거대하고 육중한 아이들에게 적응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말이다.

다섯 강아지(?) 친구들


첫만남에 우릴 겁에 질리게 한 다섯 녀석과 나중에는 아주 친해져서 정원에서 같이 놀기도 하고 포옹도 하게 되었다. 특히 가장 나이가 많은 첫째 '랄프'는 리가 앉아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 얼굴을 살포시 들이밀며 쓰다듬을 기다리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랄프는 '복서'라는 품종으로, 덩치가 크고 튼튼한 근육질 다리에 단단한 턱까지, 겉만 보면 영락없는 사냥개인데 성격은 매우 친밀하고 온순했다. 외면의 간극이 랄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랄프는 너무 귀여워


루이스 할아버지네 막내 '자크'도 랄프 못지 않게 귀엽다. 품종은 할아버지께 여쭤보진 않았지만 보더콜리인 것 같다. 엄청 똑똑하고 가장 활동적이다. 가끔 너무 활동적이라 놀아주기 벅찰 때도 있지만 집안의 애교쟁이로 사랑을 듬뿍 받는다. 매일 아침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오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게 자크였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면서 뛰어 올라 품에 안기는 자크는 하루의 시작에 활력을 불어 넣어줬다. 아침 내내 정원을 뛰어 다니고 흙이 잔뜩 묻은 앞발로 나를 안는 바람에 입고 있던 흰색 티셔츠가 지저분해지긴 했지만.

자크와 함께 춤을


루이스 할아버지가 이렇게 많은 반려견들을 데리고 사시게 된 건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 사을 겪으시고 텅빈 집안의 찬 공기 속에서 홀로 지내시던 할아버지에게 새로이 온기를 불어 넣어준 게 바로 다섯 반려견들이었다.

그에 못지 않게 이 집을 따스히 채워주는 건 카우치서퍼들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을 초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식사하며 웃음을 나누는 것이 루이스 할아버지만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었다.


카우치서핑 식구들과 함께


위의 사진에서 맨 왼쪽 남편의 바로 옆에 루이스 할아버지께서 앉아 계신다. 그 옆은 데이비드, 그 옆이 나, 가장 오른쪽이 다니엘라이다. 데이비드와 다니엘라는 콜롬비아에서부터 바이크를 타고 남미를 여행중인 부부였다. 애로운 성격에 사려깊은 데이비드와 통통 튀고 재치있는 다니엘라는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여서 우린 그들을 디디(DD) 커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디디 커플의 바이크


다니엘라는 요리를 아주 잘했다. 기존의 레시피를 따르지 않고 즉석에서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 내거나, 냉장고에 있는 아무 재료를 가지고도 지혜롭게 조합하여 음식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 뿐 아니라 콜롬비아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하여 더욱 놀라웠다.

여기서 잠깐. 남미의 밥짓기를 짚고 넘어가자면.

남미를 여행하면서 길쭉하고 건조한 남미의 쌀로 어떻게 해야 맛있는 밥을 만들 수 있을까 골머리를 앓던 참에 다니엘라를 만나 비로소 그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남미의 쌀을 조리하려면 먼저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이나 양파를 소량 넣어 볶는다. 미 쌀은 우리나라 쌀처럼 그 자체로 단맛이 충분히 있는 게 아니라서 이렇게 마늘이나 양파의 향을 더하면 훨씬 풍미가 살아난다. 마늘 또는 양파를 노룻해질 때까지 볶았으면 거기에 쌀을 붓고 같이 조금 더 볶다가 물을 넉넉하게 붓는다. 보통 쌀 3인분 정도에 물을 250cc 가량의 컵으로 세컵 반 정도 부으면 맞는 것 같다. 근데 다니엘라는 이것도 콜롬비아식으로 공식 없이 눈대중을 이용해 물을 맞추더라. 아무튼 여기까지 했으면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냄비 뚜껑을 덮고 가스불을 줄여 작은 불에서 익히면 된다. 물이 끓은 때로부터 20분 정도를 놔두면 되었던 것 같다. 이때 중요한 것이 뚜껑을 열지 않고, 중간에 쌀을 휘젓지 않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그때서야 뚜껑을 잠깐 열고 밥이 잘 되었나 먹어보면 된다. 우리나라 쌀로 냄비밥을 지을 땐 중간에 봐가면서 익어가는 밥을 한번씩 저어줘야 밥알이 엉겨붙지 않고 고슬고슬 지어졌었는데. 남미의 밥짓기는 완전히 달랐다. 이렇게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을 우리나라 쌀럼 밥을 지으려고 했으니 여태껏 설익고 맛없는 밥만 먹었던 것이다.


하루는 다니엘라가 콜롬비아의 수프 중 하나인 '아히야꼬'를 요리해주었다. 닭고기로 육수를 내고 거기에 양파, 감자, 옥수수 등 각종 채소를 넣어 끓여낸 뽀얀 수프였다. 완성된 수프에는 아보카도나 바나나를 곁들여 먹는다. 먹어 보기 전에는 수프에 과일이라니 뭔가 안 어울릴 것 같았다. 예전에 밥을 콜라에 말아먹는 묘한 식성을 가지신 아저씨를 취재했던 한 방송 프로그램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바나나 한입에 이히야꼬 한 숟갈을 후루룩 들이키자 달콤한 과일향에 옥수수와 양파의 고소 맛이 절묘하게 섞이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는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두 그릇이나 깨끗이 비웠다.


아히야꼬 먹는 법

아히야꼬 만드는 법은 다니엘라의 손을 타고 루이스 할아버지의 레시피북에 고이 간직되었다. 이 레시피북은 할아버지께서 카우치서핑으로 세계 각지의 손님들을 집에 초대하기 시작하면서 만드신 노트이다. 손님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유명한 요리의 레시피를 이 노트에 적는 것이다. 이렇게 루이스 할아버지는 이 노트 안에 세계를 담아 가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삼계탕 레시피를 적었다. 직접 만들고도 싶었지만 넣고 끓일 약재가 없어 만드는 건 포기했다. 원래 집을 나서면서 배낭에 약재팩을 하나 넣어 왔었는데 모로코에서 가족들에게 삼계탕을 해줄 때 써버리고 지금은 남은 게 없어 아쉬웠다. 삼계탕은 외국을 여행하면서 현지인들에게 선보이기 좋은 요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단 장, 김, 떡처럼 한인마트나 아시안마켓에서나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재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조리 방법도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이다. 딱 한가지, 약재팩이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 미리 챙겨가면 되니까.

루이스 할아버지의 레시피북


루이스 할아버지의 직업은 의사로 후후이 지역의 주도인 산 살바도르 데 후후이에 있는 의원에서 근무하셨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때론 밤 10시가 넘을 때까지 일을 하고 들어오실 때도 있어서 낮에는 거의 디디커플과 우리커플끼리만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루이스 할아버지 출근 시간에 맞추어 다같이 차를 타고 산 살바도르 데 후후이로 나갔다. 도착하여 할아버지는 의원으로 가시고 우리는 도시를 둘러기로 했다.

전통 복장을 입고 춤을 추는 거리의 공연가분들과 함께


사실 후후이에 오기 전엔 이곳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우리의 주요 일정은 아르헨티나 북부의 도시 살타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고 후후이는 그저 볼리비아와의 국경에서 살타로 이동하는 중간에 잠시 쉬어가려 들른 지역일 뿐이었다.

그랬던 후후이가 아르헨티나 독립운동사에서 질 수 없는 장소라는 것을 이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먼저 방문한 곳은 '후안 갈로 데 라발 박물관' 이라는 곳이다. 이 박물관은 아르헨티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후안 갈로 데 라발(Juan galo de lavalle)' 이 정치적으로 그와 대립하던 세력인 연방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그 자리에 세워졌다. 물은 그가 총을 맞았던 그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재는 아르헨티나 독립운동사를 보여주는 유물과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후후이 탈출 (Jujuy exodus)



독립운동을 지휘했던 마누엘 벨그라노 (Manuel Belgrano)의 초상


독립운동 당시에 쓰인 전투복과 총칼들



초기 아르헨티나 국기의 모습


박물관의 이름은 후안 데 갈로 라발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지만 그곳에서 알게 된 '마누엘 벨그라노' 라는 인물이 더 기억에 남았다. 아르헨티나의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들 중 하나인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은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자 아르헨티나 국기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이곳 후후이에서 스페인 식민 왕정을 지지하는 세력과 맞닥뜨렸을 때에 후후이 주민들의 탈출을 명령하기도 했다. 후후이 탈출 (Jujuy exodus) 당시 독립운동가들과 후후이 주민들은 뒤따라붙는 스페인 지지세력이 후이에 도착했을 때에 어떤 것도 차지할 수 없도록 곡식, 가축, 무기, 집 할 것 없이 모두 불 태우고서 떠났다고 한다.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고안한 국기는 독립운동군의 복색과 동일한 색이면서 각각 하늘과 땅을 의미하기도 하는 하늘색과 흰색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훗날 이 국기의 가운데에 독립과 잉카제국을 상징하는 '5월의 태양' 문양이 추가되어 오늘날 아르헨티나 국기가 탄생했다.


또한 벨그라노 장군은 독립운동에서 큰 역할을 한 후후이 지역에 '시민 자유의 깃발'을 만들어 헌정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국기와 같이 하늘색과 흰색을 바탕로 하고, 혁명을 상징하는 은 모자, 독립에 대한 의지와 결속의 상징인 맞잡은 두 손을 그려 넣었다.

후안 갈로 데 라발 박물관 다음으로 방문했던 정부 청사 건물 안에서 이 깃발을 직접 보게 되었다. 래 사진에서 보이는 깃발는 전시용이고 과거에 사용된 실제 깃발은 청사 안쪽 비밀공간에 보존되어 있다. 청사 직원분께서 감사하게도 국기 보존실의 문을 잠깐 열어 주셔서 실물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은 금지고 눈으로만 관람할 수 있었다.


정부 청사에 전시된 시민 자유의 깃발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의 흉상




후후이 벨그라노 광장에 서 있는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 동상



후후이 탈출을 묘사한 조각군상



정부 청사 앞 공원에는 오렌지 나무가 가득했다. 떨어진 오렌지들을 주워와 그날 저녁 잼을 만들었다.


정원에서의 점심 식사


후후이 카우치서핑 가족들과의 행복한 사흘이 지나고 오늘은 디디커플이 여정을 계속하러 떠나는 날이다. 작별 전 함께하는 점심식사로 우린 모로코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타진 비슷하지만 타진은 아니고 냄비에 소고기 또는 닭고기와 갖은 야채들을 넣고 푹 끓여내는 음식이다. 들어가는 재료는 타진과 거의 동일하고 맛도 비슷하다. 타진이 없을 때에 급한대로 냄비에다 간단히 만들어내기 좋은 요리이다. 이름은 '가밀라', 모로코 말로 냄비를 가밀라라고 불러서 요리의 이름도 그렇게 부른다.


문제는 오늘 아침 가스불을 켰을 때 가스가 다 떨어졌는지 불이 붙지 않았다는 것. 루이스 할아버지는 점심식사 시간에 맞추어 집에 돌아오실테지만 당장은 출근하셔서 안 계셨다. 고민끝에 우리는 할아버지의 정원에 가득한 나무 땔감을 이용해 요리를 하기로 했다.

할아버지께 혼나려나 약간 걱정도 하면서..


"으음~ 냄새 좋은데?"

"그러니까. 진짜 불로 만든 덕분에 오히려 맛이 더 좋겠어."

확실히 요리는 훌륭하게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냄비도 그만큼 까맣게 그을려가고 있다는 게 좀 걸리긴 했다. 주방에 철수세미가 있으니 나중에 그걸로 깨끗이 닦아내면 되긴 할 거다. 근데 할아버지껜 뭐라고 말씀드리지..


가밀라가 완성되었을 때 냄비는 아예 디자인이 까만 색상이라고 해도 될 만큼 새까만 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때맞추어 집에 돌아오셨다.

"루이스..! 오셨어요. 하하.. 저기 그게, 집에 가스불이 없길래 불을 좀 지폈어요.. 하하하.."

할아버지는 다행히 전혀 화를 내지 않으셨다. 나무 그을린 향이 가득한 정원과 한쪽에 쌓인 땔감들, 어색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우리들, 그 와중에 예쁘게 차려진 상차림. 그저 이 광경이 황당하고 웃기셨는지 껄껄 웃으실 뿐이었다. 그러더니 곧 구석진 방에서 뭔가를 가지고 나오셨다. 이럴수가. 새 가스통이었다.

"아니.. 가스가 없으면 나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쉬웠을텐데. 힘들게 불을 피우고 있었어? 허허허."

"엇. 그러게요. 왜 전화를 안 드렸지?..하하하하하!"

헐. 진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으면 바로 해결 되었을 것을 불 피운다고 한바탕 난리를 치다니. 우린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어쨌든 점심은 아주 맛나게 차려졌으니 그걸로 되었다. , 물론 사 후에 정원도 싹 정리하고 냄비도 다시 새걸로 만들어 놓았음은 당연하다.

가밀라 완성!


그 맛은 따봉!


마지막 식사를 끝으로 디디커플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재미있고 배려심 넘치는 친구들과 함께해서 진심으로 즐거웠다. 그만큼 떠나 보냄이 쉽지 않았다. 우린 디디커플에게 손편지와 작은 선물을 주었고 나중에 꼭 한국이나 모로코에 바이크를 타고 놀러와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들이 탄 바이크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도 루이스 할아버지도 다섯 반려견 친구들도 대문 앞을 쉬이 떠나지 못하고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굿바이 씨유 어게인

지금은 후후이를 떠나온 지 벌써 수개월 째인데도 루이스 할아버지와 디디커플과는 자주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언젠가 다시 루이스 할아버지 댁에서 그때처럼 한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밤 늦게까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언제라도 기회가 온다면 돌아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후후이에도 집이 생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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