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우유니
우유니 소금사막은 볼리비아를 찾는 모든 여행객들 마음속의 1순위 방문지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우유니 사막이 이번 여행에서 달성해야 할 '과업'들 중 하나였다. 사막의 면적은 우리나라 서울 면적의 20배에 달한다고 한다. 따라서 가이드 투어로만 방문이 가능하다. 어찌나 광활한지 실제로 투어 중에 사막 한가운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불쌍한 강아지를 보기도 했다..
아무튼 소금사막 투어는 가이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므로 투어사를 선택할 때 각종 온라인사이트를 열심히 검색하고 비교하여 가이드님이 사막에서 사진을 잘 찍어주신다는 후기가 많은 곳을 고르는 것이 포인트이다.
사막 당일치기 투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아침에 시작해 일몰까지 보는 데이+선셋 투어, 일몰부터 밤하늘을 감상하는 선셋+스타라이트 투어, 새벽에 일출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 아침에 끝나는 선라이즈+데이 투어. 우리는 해질녘의 사막을 보고 싶어 데이+선셋 투어를 선택했다. 스타라이트 투어에도 관심이 갔지만 맑은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려면 보름달을 피해야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딱 보름과 겹쳐 예쁜 별을 보긴 어렵다고 하여 선셋까지만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으로 투어를 예약해 두고 저녁 식사를 위해 시내를 돌아다녔다. 우유니는 오직 소금사막을 보러 오는 곳이라 시내는 삭막한 편이다. 중심가의 음식점들은 전부 관광객을 타깃으로 고급스럽고 비싼 메뉴만 팔기 때문에 저예산 여행자인 우리는 조금 발품을 팔아 멀리 떨어진 작은 식당을 찾아 밥을 먹었다.
버스 터미널 근처에는 길거리 음식을 곳곳에서 팔고 있어 요깃거리로 좋다. 베리류의 과일을 갈아서 만든 듯한 따끈한 자줏빛 음료와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내 슈가 파우더를 뿌린 빵을 같이 시켜 먹었다. 조촐한 수레에 빵을 만들 재료를 담아 오신 동네 아주머니께서 낡은 팬에다 튀겨 주시는 소박한 빵일 뿐인데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이 좋았다. 결국 두 번 더 시켜 먹고 다음날에 또 먹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 드디어 소금사막 투어가 시작되었다. 밴에 탄 인원은 가이드님까지 총 일곱 명이다. 그중 나를 포함해 세 명이 한국인이었다.
"어머 한국분이세요? 안녕하세요~!"
그동안 그리 능숙하지 못한 영어로만 소통하며 지내다가 그리웠던 모국어를 쓸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다니. 오늘 해가 질 때까지 맘껏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입에 쳐진 거미줄이 싹 걷히는 기분이었다. 만나 뵌 한국분들은 모두 남미에서 휴가를 즐기고 계시는 직장인이셨다. 두 분 다 혼자 여행하시는 분들이었고 오늘 처음 만났는데도 다정하고 유쾌하셔서 투어 그룹의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셨다.
투어에 참가한 다른 두 분은 엘살바도르에서 오신 모녀였다. 미소가 똑 닮은 어머님과 따님이 같이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데이투어에서는 소금사막으로 가는 길에 있는 기차무덤, 국기 광장, 선인장이 빽빽한 잉카와시 섬 등에서 멈추어 관람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첫번째 도착지인 기차무덤은 과거 광산에서 캔 광물들을 싣고 활발하게 수출하던 기차들이 더이상 쓸모가 없어져 허허벌판에 버려진 곳이다. 볼리비아와 페루가 칠레와의 영토 전쟁에서 패하여 기차로 교역하던 길목을 칠레에 내어주게 되면서 그 많던 기차들이 운행을 멈추었다고 한다. 지금은 세월을 맞아 온몸에 녹이 슨 채로 더는 달릴 수 없는 선로 위에 서 있는 기차들이지만 여전히 그 멋만은 잃지 않고 있다.
기차무덤을 지나 차로 얼마간을 달려 사막에 들어서자 주변이 온통 하얀 소금벌판이었다. 우리를 비롯해 다른 투어사들에서 온 차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운전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가이드님이 시속 120km를 넘는 고속으로 운전을 하고 계신데도,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사막만이 펼쳐지니 그 속도가 잘 체감되지 않았다. 다른 투어 차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레이스를 해가며 우린 소금 사막의 더 안쪽으로 이동했다.
소금의 결정 모양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막의 가운데에 다다라 차가 멈췄다. 차에서는 배가 무척 고팠는데 빛나는 소금 바닥에 내리자 생전 처음 마주하는 풍경에 배고픔도 깜박 잊을 정도였다. 이 전부가 소금이라니. 그 규모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난 사막은 눈을 의심케 했다. 우리는 바닥의 소금을 찍어 먹어보기도 하고 그 위에 누워보기도 했다. 오랜 옛날, 한때는 바다였으나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라 사막이 된 이곳. 지구에게는 그저 작은 꿈틀거림이었을 그 움직임이 만들어 낸 장소에 인간은 개미보다도 미미한 존재가 되어 그 위를 걸어다니며 경탄을 금치 못한다. 대자연 앞에 다시 한번 겸손해지게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가이드님 '마르케스'는 훌륭한 운전솜씨에 촬영실력까지 겸비한 능력자였다. 거기에 넘치는 아이디어까지 제공해주어 투어 내내 수십가지 포즈로 수백장의 사진을 찍었다. 한컷씩 찍을 때마다 함께 배꼽을 잡고 깔깔대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 투어의 참가자들 중에 미성년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우린 잠시 그때 그 시절의 동심을 안고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겉옷이 없으면 추울 기온이었는데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진을 찍으니 나중엔 더워서 다들 자켓을 벗어 던졌다.
해가 질 시간에 맞추어서 마르케스는 우리를 다시 차에 태우고 이동했다. 우유니 소금사막이 지상 최대의 거울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바로 물이 고여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응? 근데 지금 건기라서 물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러게. 조금은 볼 수 있는 건가?"
우유니의 성수기는 우기인 12월부터 3월 사이로, 비가 내려 사막에 고인 물 위에서 특별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11월. 우유니의 건기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때문에 사실 거대한 거울이 된 사막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르케스가 우리를 데려간 곳에는 거짓말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지평선을 따라 퍼지는 노을을 담아내기에도 충분할 만큼.
해가 사막 아래로 꼬르륵 가라 앉을 때까지 우린 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사막이 온통 어둠에 싸이기 전까지 일분 일초가 아까웠다. 그러다가도 간혹 멍하니 넋을 놓고 수면에 비친 또 하나의 하늘을 감상하게 되었다. 발 아래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마치 하늘 위를 걷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고. 욕심껏 담고 또 담았지만 결코 다 담아올 순 없었던 소금사막의 절경. 두 눈으로 감당하기에 역부족일만큼의 아름다움은 넘쳐서 가슴에 담기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우유니에서의 그날 하루를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르곤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