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반 즈음 문득
라파즈의 가파른 내리막을 걸어가다 뜬금없이 남편이 물었다.
"여보는 어느날 갑자기 도깨비가 나타나서 '소원 3가지를 들어줄테니 말해보아라' 하면 뭐라고 할거야?"
고산이라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가 웬 뚱딴지 같은 질문이야 하며 웃다가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글쎄. 나에 관한 걸 빌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어떤 것이든 다 되는거야?"
"그냥 아무거나."
"음. 그렇다면 첫번째는. 우리 가족들 전부 다 평생 안 아프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빌거야."
"오케이. 그 다음엔?"
"두번째는 음.. 역시 돈이지! 크하하. 돈이 많이 생겨서 여행도 계속하고, 하고 싶은 것 다하면 좋겠다."
"좋네. 그럼 마지막은?"
마지막? 아, 하나가 더 남았는데 가만 있어 보자..
"엥 뭐야. 딱히 더 바라는 게 없네?"
정말이다. 이제보니 살면서 바라는 게 그렇게 복잡한 것들이 아니구나.
"아, 맞다. 이 세상에 전쟁이 영원히 없어졌으면 좋겠어."
"오 그것도 좋은 소원이네."
농담삼아 물어본 남편의 질문에 생각의 나무가 가지를 뻗어간다. 세가지의 소원을 말했지만, 사실 한가지 소원만 있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의 건강. 아니 더 나아가 인류의 건강을 소원으로 빌면 적어도 사는 동안 모두가 질병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돈도 중요하긴 하지만, 돈은 어떻게든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지, 건강은 언제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아니면 '모두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라는 소원도 괜찮겠다. 하지만 그건 좀 두루뭉술하니까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나에겐 '건강'이 첫 소원일 것이다.
우리는 자주 건강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 같다. 돈과 권력은 중하게 여기면서 건강은 마치 매일 공짜로 마시는 산소처럼 당연히 여기는 이유는 아마도 '노력 없이 얻어진 것'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꾸준한 관리를 통해 가꾼 후천적인 건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세상에 나온 것이라 거저 주워졌다고 여겨지곤 하는, 각자의 타고난 건강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누군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원치도 않았던 결핍을 안고 생을 시작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자의와 관계없이 건강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허나 모든 걸 가진 사람들은 정작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산다. 나 또한 그러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것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아침의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어 감사하고, 저 바위를 오를 수 있어 감사하고, 물가의 새소리를 들을 수 있어 감사하다.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어 감사하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것조차 당연한 게 아니구나. 엄마와 아빠가 있어서 내가 태어났고, 내 조상님들을 키워낸 지구가 있어 내가 오늘을 살고 있고, 맨 처음 우주에서 마침 딱 맞는 대기와 온도가 형성되어 지구라는 터전이 마련되었기에 인류가 있다.
그래서 그날은 엄마한테 카톡을 하면서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여태껏 살면서 아마 한번도 직접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열달 동안 뱃속에 데리고 있어 주는 것이 당연한 고생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한테도 똑같이 고맙다. 그리고 그동안 더 살갑지 못해서 미안하다. 삼십년 가까이 같이 살아 주고 돌봐준 아빠의 노고 역시 내가 당연히 누렸어야 할 행운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모든 가족들. 우리가 자라는 걸 지켜봐 주시고 항상 응원해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어머니인 지구별에게도. 한 발 한 발 이 땅을 밟을 때마다 감사하다.
그래서 오늘을 더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실없게 들리기도 하는 '소원'에 관한 짧은 대화에서 비롯된 장황한 사색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남편한테도 물어봐야지.
"그럼 여보는 소원 뭐라고 빌고 싶은데?"
"나도 똑같은 거. 하하하."
여행의 중턱에 서서 문득 떠올린 단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