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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고도 아름다운

조지아- 트빌리시

by 소울메이트

여행기를 새로이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브런치북의 부제목을 '아시아1'이라고 하게 된 이유를 잠시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동유럽부터 서아시아까지 걸쳐 있는 튀르키예와 조지아에서부터 시작되어, 남아시아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한데 이 '대륙의 분류'라는 게 한 가지 분류법으로 깔끔히 떨어지는 게 아니라 때론 광의로 때론 협의로 쓰이면서 한 나라가 여러 대륙에 동시에 속하기도 하다 보니 제목을 정하기 쉽지가 않았습니다. 서아시아편이라고 하기엔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 섞여 애매하고, 아시아편이라고 통틀어 버리면 하나의 브런치북이 너무 방대해질 것었습니다. '중동'이라는 표현을 써 중동/서남아시아/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로 분류를 할까도 고민해보았지만 그도 어려습니다. 렇게 세분하면 한 브런치북에 실릴 글들이 너무 적어기도 하고, 조지아 같은 나라는 중동도 서남아시아도 아니기 때문에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중동' 용어 자체도 너무 유럽 중심으로 지어진 지명이라 별로 탐탁지 않 쓰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그리하여 차라리 아시아 1편, 2편, 3편 정도로 번호를 매겨 발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르키예와 조지아는 유럽의 이미지로 좀 더 잘 알려진 나라들인 것 같지만 동유럽 국가들과 여행 시기가 너무 달라 한데 묶기 어려워, 서아시아에 속한다고 보기도 하므로 아시아 국가들과 묶게 되었습니다.


그럼 남아메리카 대륙을 떠나 튀르키예를 경유하여 조지아로 날아간 날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본래 목적지는 튀르키예였다. 그런데 비행편을 알아보다가 이스탄불로 바로 가는 것이나, 이를 거쳐 조지아의 트빌리시에 내리는 것이나 비용 차이가 거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짧게라도 한 나라를 더 경험할 수 있는 후자를 택했다. 여행 계획도 수정했다.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를 다닐 생각이었던 걸, 지아에서 르키예로 육로 국경을 넘어 튀르키예 동쪽의 트라브존과 우준괼을 여행한 뒤 이스탄불로 날아가는 것으로.


트빌리시 도착 전 이스탄불 공항에서 7시간 가량 경유를 했다. 우리가 이용한 터키항공 웹페이지를 찾아보니 이 경우엔 경유하는 동안 무료로 투어를 제공한다 하였다. 프로그램은 이스탄불 야경 워킹 투어로 시가지를 걸어다니는 것이 전부였지만 무슨 궁전에서의 저녁식사가 포함된다 해서 바로 신청했다. 근데 막상 투어에 참여했을 땐 저녁식사보다 눈부신 야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비가 내려 물이 찰박찰박 흐르는 밤거리에 모스크를 밝히는 조명이 아른거렸다. 우천시에만 볼 수 있는 거리풍경이었기에 조금 춥긴 했어도 오히려 감사했다.

아야 소피아 앞에서


술탄 아흐마드 모스크


아야 소피아


비오는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다음날 이른 새벽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트빌리시는 하얀 입김이 나오도록 추운 겨울이었다. 배낭에서 옷을 있는 대로 꺼내 껴입었는데도 한기가 드는 이유는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표정한 버스 안 사람들, 건조한 눈빛, 가라앉은 공기와 침묵이 가슴 속을 서늘하게 했다. 남미의 따사로운 태양, 마주치면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지게 웃어주던 현지인들, 왁자지껄한 공공장소, 문이 닫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복작이던 버스와 그 안에서 들리는 정겨운 말소리와 구수한 노랫가락.. 에 비해 놀랍도록 정돈된 트빌리시의 모습은 왜인지 자꾸만 그 어수선하고 소란했던 남미에서의 시간들, 심지어는 야간버스가 늦어 분통을 터뜨리던 순간들까지도 잘 만든 영화처럼 미화시켜 머릿속에서 재생시키는 것이었다.

"나 어떡하냐. 남미를 잊지 못하는 것 같아."

"나도. 돌아가고 싶어.."

나와 남편은 얼마 전 실연 당한 슬픈 반쪽짜리 연인처럼 남미를 떠올리며 한동안 애잔함에 잠겼다.


그랬던 마음도 잠시, 이내 트빌리시에 천천히 빠져들게 되는데


시온 성당


조지아는 오랜 역사를 가진 국가이서 그 세월간 외세의 침입으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던 나라이기도 하다. 기원전 그리스의 침략을 시작으로, 이후엔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영토를 잃기도 했며, 몽골 제국에 의해 한 번 멸망을 당했던 일도 있다.

현재까지도 조지아는 독립국이지만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위치에 놓여 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을 했음에도 러시아는 조지아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에 가입함으로써 유럽과의 연대로 자국의 주권을 보호하길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에선 러시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사리 EU 가입을 적극 추진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을 거듭해야만 하는 소국의 입장이 너무나도 공감된다.


트빌리시 최고(古)의 성당인 시온 성당은 무려 7세기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후 이슬람 제국의 침략으로 성당이 부서져 12세기 경 재건했으나 또 한번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파괴되었고 16세기에 재복원하게 된다. 이런 역사로 인해 조지아에서 무슬림에 대한 감정은 좋지 못하다.

트빌리시에서 우릴 받아준 카우치서핑 호스트 '미리암'은 이집트인 무슬림 남편과 살고 있었. 미리암은 크리스찬임에도 종교에 크게 상관하지 않아 무슬림과 결혼했지만 대부분의 조지아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좋아하지 는다고 다. 회에서의 종교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결실을 이루어낸 미리암과 그 남편을 응원한다.


조지아의 어머니

트빌리시엔 '조지아의 어머니'라 불리는 동상이 언덕 위에서 도시 전체를 굽어보고 있다. 조지아 전통 복장을 한 여성이 오른손엔 검을 쥐고 왼손엔 와인이 든 잔을 든 모습으로 서 있다. 은 적의 숱한 침입에 맞서 싸우며 견뎌낸 조지아의 발자취를, 와인잔은 호의를 가지고 이 나라를 방문한 손님에게는 환대를 베푼다는 의미가 있다. 어쩌면 이 동상이 조지아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 같다.


거리에는 로컬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흔하다.


와인병 트리

조지아의 어머니상이 든 와인잔의 의미처럼 우리도 미리암의 집에서 와인을 받아 마시며 환영을 받았다. 그녀의 부모님께선 시골에 사시면서 농사를 크게 지으시는데 와인도 직접 담그신다고 했다. 아버님이 담그셨다는 와인은 시중의 것들보다 더 진하고 달았다.

와인이라 하면 보통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떠올리곤 했는데 놀랍게도 와인의 탄생지는 조지아이다. 때문에 조지아에는 와인가게가 흔하며 대부분의 식당에서 와인을 취급하고, 어느 마트에 가던지 질 좋은 와인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또한 꿀의 생산지로도 유명해서 기념품 가게에 인기 많은 상품으로 빠지지 않고 진열되는 것이 유리병에 담긴 꿀이다. 조지아산 꿀을 넣어 만든 맥주를 팔기도 한다.


꿀맥주


조지아 국기가 그려진 바이크


평화의 다리 야경


트빌리시가 처음 조지아의 수도로 임명된 것은 1500년 전이라고 한다. 과거의 모습이 잘 보존된 거리 곳곳에서는 천년이 넘는 도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며, 정교회 특유의 건축 양식은 주로 가톨릭 중심인 여타의 유럽 국가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조지아의 어머니상이 서 있는 언덕에 오르면 펼쳐지는 트빌리시 전망


메테히 정교회와 그 앞의 바크탕 1세(트빌리시를 조지아의 수도로 세운 군주)


천천히 걸으면서 감상하는 트빌리시의 야경


조지아 사람들은 언뜻 차갑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무뚝뚝한 표정 속에 감춘 정이 있다. 먼저 반갑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주는 친절을 느낄 수 있었다.

밤거리를 걷다가 어느 뮤직바에서 공연중인 가수들과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았다. 뻣뻣하게만 보였던 조지아 사람들이 이렇게나 춤을 잘 춘다니. 남미 사람들이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불같았다면 이들은 으로 들어나지 않는 김을 간직한 숯처럼 보였다.


왠지 눈에 띄는 한 분! 엄청 잘 추신다.

저녁 식사로 미리암이 추천해 준 '힌칼리' 맛집에 갔다. 힌칼리는 속에 소고기나 치즈 등을 채워 만든 조지아식 왕만두이다. 어딜 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이지만 문난 집으로 가면 소고기 육즙이 그대로 보존된 힌칼리를 맛볼 수 있다. 먹는 법은 만두의 꼭대기를 손으로 잡고 주머니 부분을 작게 한입 베어 먹어 구멍을 만든 다음 육즙부터 마시면 된다. 포크로 찍어 먹거나 칼로 썰면 그 물이 다 빠져 나와서 맛이 없어진다. 처음에 뭣 모르고 그렇게 먹었다가 직원분이 먹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그대로 따라하자 힌칼리를 100% 즐길 수 있었다. 치즈가 들은 힌칼리도 같은 방식으로 먹는데 작은 컵에 준비된 녹인 버터를 베어 문 구멍 속에 조금 부어서 먹으면 버터향과 치즈가 섞여 훨씬 맛있다.


힌칼리


조지아의 진짜 매력은 산지에 가야 알 수 있다고들 한다. 우리는 잠시 들러가는 것으로 트빌리시서 2박만 했기 때문에 등산을 하러 다른 지방에 가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했다. 남미에서 세계여행 중이신 한국인 커플을 만났던 적이 있는데 그분들 말씀으로도 조지아에서의 산행이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었다.

짧은 시간이라도 트빌리시 구석구석 즐기긴 했지만, 조지아라는 나라를 제대로 보았다고는 하기 힘들다. 이번에는 살짝 문만 두드려 보았다 생각하고, 다음에는 날씨 좋을 때에 맞추어 여유를 가지고 등산 여행을 와보고 싶다. 다시 만나자, 조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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