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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평화로 덮인 호수마을

튀르키예- 트라브존, 우준괼

by 소울메이트

조지아에서 튀르키예로 국경을 건너러 기차를 타고 조지아쪽 국경도시인 바투미로 간다. 남편은 그날 따라 눈이 많이 내려 달리는 내내 열차 밖 설경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나는 기차에서 코도 안 골면서 깊은 잠에 빠져 눈은 보지 못했다.

바투미에서 도착해서는 버스를 타고 튀르키예의 트라브존으로 넘어간다.

트빌리시-> 바투미 기차 안에서

트라브존 도착



트라브존은 보통 이로부터 버스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조용한 호수마을 '우준괼'을 방문하기 위한 중간 도착지로 찾는 곳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우준괼은 겨울이면 기온이 매우 낮고 눈도 많이 쌓이기에 관광객이 거의 없어 자연스레 트라브존도 텅텅 빈다. 트라브존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우리가 내일 우준괼로 간다고 하자 아마 눈이 종아리 높이까지 쌓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다녀오는 길에 아단이 모스크에서 울려 나왔다. 아단의 내용은 '신은 위대하다. 신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걸 믿으며, 무함마드 성인이 신의 예언자임을 믿는다. 와서 기도하라. 와서 원을 받으라. 신은 위대하다. 신은 오직 한 분이시다.' 라고 해석된다. 한마디로 '기도 시간이 되었으니 어서 기도하러 오시오'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거다. 그래서 아단이 중요하고,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의 한 '모아띤(아단을 부르는 사람)'은 그 뛰어난 성량과 노래실력으로 많은 무슬림들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트라브존의 이 아단을 듣자 이제껏 들어 왔던 수많은 아단은 다 잊혀질 정도로 감명을 받았다. 심지어 아단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아한 목소리에 이끌려 모스크로 향할 것만 같은 힘을 가진 아단이었다. 감탄하느라 중간에 놓쳐 영상에는 아주 일부만이 담겼다.

트라브존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아단


우준괼에 왔을 땐 예상대로 눈이 가득했고, 호수 주변엔 아무도, 정말 아~무도 없었다. 비수기라 숙소에도 우리 밖에 없었다. 깨끗하고 온수도 잘 나오고 나름 호수 전망도 갖춘 숙소였는데 아주 싼 가격에 2박을 하게 되었다. 호수에서도 이 고요한 마을에 꼭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비수기 여행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숙소에서 보이는 호수


하얀 겉옷은 트빌리시에서 우릴 재워 주었던 미리암이 고맙게도 추울 때 입으라고 준 옷이다.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호수를 빙 돌아 걷다가 카페를 발견했다. 춥기도 하고 커피도 필요하던 참이라 얼른 들어가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터키쉬 커피 한 잔을 시켰다. 터키쉬 커피는 받으면 5분 정도 기다렸다가 커피가루가 가라앉으면 마신다. 안 그러면 입 안에 앙금처럼 가루가 씹혀서 맛이 탁하다. 다 마신 뒤 잔 바닥에 가라앉은 커피가루는 먹지 않고 남겨 두면 된다.

터키쉬 커피. 다 마시면 커피가루가 바닥에 가라 앉아 있다.


커피 타임 후에 호수 반대편을 걸어 밤 호수를 감상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밤에는 호수보다도 마을 입구에 세워진 모스크에 더욱 눈길이 간다. 오스만 제국 특유의 모양으로 날씬하게 솟은 두 미나렛(단이 울리는 첨탑)과 푸른빛의 돔이 황홀하게 빛난다.

UZUNG♡L


우준괼의 모스크


남편은 나와 달리 추운 날씨도 좋아하고 특히 눈을 아주 좋아해서 우준괼에 있는 동안 아이처럼 행복해 했다. 자기가 가본 마을 중에 최고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나는 추운 것은 질색이고 눈도 썩 좋아하진 않지만 호수를 배경으로 온 마을이 흰눈에 뒤덮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려는데 골목의 가로등 빛 아래로 눈이 펑펑 내리는 게 보이고 앞집의 굴뚝에서는 하얀 김이 솔 나왔다. 아무 소음도 없는 이 공간에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 장면을 놓칠 수가 없어 또 한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흰 눈 위에 쓴 MOROCCO♡


겨울 우준괼에 밤이 찾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는 어제보다 더 쌓인 눈을 밟으며 언덕길을 올랐다. 위에 호수가 잘 보이는 음식점이 있다고 하여 호수를 보면서 아침을 먹기 위해 공복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미끄러질라 조심조심 디디며 조금씩 올라갈 때마다 호수와 그를 둘러싼 겨울산이 점점 한 눈에 들어온다.


도착!

음식점에 도착하자 저어기 작아진 호수와 함께 우준괼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수프와 빵과 차 두 잔을 주문하고는 발코니로 나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겨울의 우준괼이 이렇게 예쁘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이 계절에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분명 더 늘어날 것 같다. 남편의 한 친구도 어느 여름날 우준괼에 다녀갔다고 하는데, 남편이 SNS에 올린 겨울 우준괼 풍경을 보고 여름과 또 다른 멋이라며 댓글을 남겼다.



식사를 마치고 호수로 내려오니 어느샌가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푸른 창공이 살짝 드러났다! 어제는 뿌연 구름이 산 중턱까지 내려와 있었는데 하늘이 보이니 호수가 한결 더 맑아 보였다. 둘째 날에는 날씨 운이 좋았다.




평화롭게 노니는 오리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이틀 간 호수만 바라보았. 잔잔한 호수에 우리 감정도 덩달아 차분해지고 흰 눈에 너저분했던 마음도 하얗게 비워진 것 같았다. 여행의 중반부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그 후반부를 또 새로운 추억들로 채워갈 수 있도록 차분히 쉬면서 정리할 수 있었던, 겨울의 우준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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