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이스탄불
이스탄불에 온 이유는 딱 하나, 남편의 10년지기 친구 하미드를 만나러다. 모로코의 마라케시 사람인 하미드는 나의 친구이기도 하다. 3년 전 남편과 같이 마라케시를 찾았을 때 하미드를 처음 만났다. 하미드는 그때 탄지아라는 귀한 모로코 음식까지 준비해 엄청난 환대를 해주었다.
그 뒤로 하미드는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모로코를 떠나 튀르키예로 이주했고 이스탄불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남편은 한국에서, 하미드는 튀르키예에서 각자 바쁘게 살아가던 중에도 두 사람은 종종 연락하며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스탄불에서 하미드를 다시 만났다.
하미드와 그의 부인 '하난'은 이른 새벽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린 우리를 졸린 기색 하나 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두 사람은 출근으로 바쁜 중에도 우리의 식사까지 챙겨주었다. 오랜만에 먹는 모로코식 요리들에 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
하미드 부부가 출근을 한 사이 우리는 둘째 아들 '키난'과 시간을 보냈다. 키난은 아홉살밖에 안 되었는데도 속이 깊고 야무졌다. 하미드 가족에게 모로코 타진을 만들어 주기 위해 키난을 데리고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갔는데 재료 하나 하나 비교하고 고르는 행동이 초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키난. 간식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 봐. 우리가 사주고 싶어서."
"에헤이 아니에요 아니에요! 손님이신데. 제가 사드릴게요, 골라보세요."
간식을 고르라고 했더니 서른살은 훌쩍 넘겼을 듯한 말투로 만류하며 주머니에서 꼬깃거리는 지폐를 몇장 꺼내는 키난. 평소에 모은 용돈이라며 자기가 계산하겠다는 것이다. 귀여우면서도 어쩜 이렇게 일찍 철이 들었나 궁금했다. 가까스로 설득해서 간식도 사주고 용돈으로 계산하려는 것도 말렸다.
집에 와서 타진을 만들 때도 키난은 본인이 도와주겠다며 고사리손으로 양파도 썰고 감자도 썰었다. 속도는 느리지만 제법 태가 났다. 기특해서 나중에 하미드와 하난에게 키난이 타진을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하미드의 가족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진 못했지만 같이 있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쌓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3년만에 만났으니 할 얘기가 당연히 많았고, 또 아이들도 데리고 같이 대화를 나누니 더 즐거웠다. 첫째 와씸은 성격이 과묵하고 사춘기라 대부분 시간을 방에서 공부를 하며 보냈다. 와씸과 대화는 별로 못했지만 착하고 듬직한 맏아들인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활발한 둘째 키난은 우리가 얘기를 하고 있으면 옆에 와서 앉아 있기도 하고 차도 같이 마셨다. 그런 키난이 귀여워서 우린 이것저것 물어봤다.
"키난은 나중에 꿈이 뭐야?"
"파일럿이 될 거예요."
"오우 정말? 왜?"
"그냥 하고 싶어서요."
"파일럿 멋지다. 무슨 항공에서 일하고 싶은데?"
"음.. 카타르 항공?"
"우와~ 최고다. 그럼 번 돈은 어디다 쓰고 싶어?"
"스위스에 집을 살 거예요. 아주 크고 방이 여러개인 빌라. 거기서 가족들이랑 다 같이 살 거예요."
"정말? 그럼 우리도 초대해 주는 거야?"
"당연하죠."
사실 하미드가 튀르키예에서 일하는 소식을 가끔 들을 때마다 걱정을 조금 했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이주민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타국에 발붙이고 적응해서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는 기분까지 들면 몇배로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직접 이스탄불에 가서 하미드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따뜻한 가정에서 행복해 보여서 안심이었다. 직장에서도 초반에는 현지인 상사와 트러블이 조금 있었지만 지금은 큰 문제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이스탄불은 아름다운 도시이고 사람들도 차가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친절해.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고 아이들을 키우기에 각종 혜택도 많아서 살기 좋아."
하미드는 이스탄불에서의 삶에 아주 만족하며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우린 식탁에서 모로코 차를 마시며 각자의 살아가는 얘기를 하면서 오래오래 회포를 풀었다.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 준 하미드 가족을 이 다음에는 우리나라에 꼭 초대하고 싶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우정은 언제까지고 변함 없이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