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를 준비할 때 즈음.
나>> 나는 여행부터 가고 싶어.
붑커>> 그래그래. 근데 일단 한국에 적응부터 좀 하고..
나>> 적응은 천천히 해도 된다니까아아아아안~~ 응? 플리즈~~~
붑커>> 하하, 그렇게 가고 싶어?
네!! 그렇게나 가고 싶습니다, 여행.
우리는 영상통화로 결혼하고 같이 살게 되면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지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 가운데 우리 둘 다 간절하게 꿈꾸는 것이 바로 '길고 긴 세계여행'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자금을 모아 몇년 안에는 꼭 여행을 떠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의견 차이가 생겼다.
남편은 '우선 한국에서 일을 시작해놓고 그 사이 짤막하게 가끔씩 놀러다니자. 긴 여행은 이후에 해도 된다'는 의견.
철없는 나는 '일을 한 번 시작하면 생각보다 쉬기 어렵다. 그 전에 한두달은 같이 여행을 하고 싶다. 다녀온 다음 또 돈 모아서 긴 여행을 준비하자'는 의견.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남편 말이 다 맞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직장 구하고 안정을 찾은 뒤에 모범생처럼 차근차근 준비해서 여행을 떠나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근데 그래도 난 추억부터 쌓고 싶다.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 결혼 기념으로 한동안은 같이 좀 즐겨도 되지 않은가?!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게되면 언제 그만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데 그렇게 일만 하다가 혹시라도 변수가 생겨 긴 여행을 못가게 되면 얼마나 후회될 것인가! 또 무엇보다 요새 기후변화가 심각한데(결국 이렇게까지 비약을..) 몇 년 뒤에는 아름다웠던 자연이 하나 둘씩 사라지면 어떡하려고? 아니 극단적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내일 갑자기 지구가 없어져 버리면 어떡해. 그렇지 않나? 우리가 우주여행을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이 지구 안인데, 살아있는 동안 하루바삐 다닐 수 있을 만큼 돌아다녀 봐야하지 않겠냐구.(내가 생각해도 뻔뻔하다 뻔뻔해. 그냥 놀고 싶다고 말해!)
마침내 남편이 동의했다.
이리하여 우습게도 우리는 결혼 전에 여행 계획부터 세웠다.
* 이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남편도 사실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고 한다. 근데 가장으로서 얼른 취직부터 해야할 것 같아서 반대했단다.
음 기특하군요. 하지만 배낭부터 챙깁시다!
드디어 출국날.
인천공항 출국심사장에서 남편과 손잡고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붑커>> 오래 전부터 이거 해보는 게 꿈이었어.
나>> 뭔데?
붑커>> 공항에서 같이 손잡고, 한손에는 여권 들고 줄 서 있는 거.
남편은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아주 귀여운 걸 꿈꿀 때가 있다.
인생에서 뭣이 중헌지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번에 우리가 택한건 '추억 만들기'였다.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우리를 오래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60일간의 동남아시아 신혼여행이 시작되었다.
조금은 길지만, 길다기엔 너무나 아쉽고 소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