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의 마지막 행선지인 파타야로 향하는 날. 나는 전날 먹은 무언가가 잘못됐는지 몹시 아팠다. 방콕에서 파타야로 가는 버스는 약 3시간을 달려가는데 그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기사님께 부탁드려 중간에 도로변에 한차례 토하고 나니 조금 나아졌지만 이후로도 자꾸 오한이 들고 메스꺼움이 가라앉질 않았다.
파타야에 막 도착해서 숙소로 가는 길에 탄 택시.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널브러져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했으나 오늘은 무슨 마가 꼈는지 숙소 사장님께서 남은 방이 없다고 하신다.
붑커>> 저희 부킹닷컴에서 이미 예약하고 왔는데요..?
사장님>> 이런, 무슨일인지 모르겠네요. 죄송하지만 방이 다 찼어요.
숙소는 OYO라는 호텔체인에 소속된 곳이었는데 OYO회사와 숙소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안돼서 생긴 문제였다.
나>> 끄으으으...
배낭에 기대 엎드려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붑커는 급하게 다른 숙소를 알아보았다. 온 나라의 여행자들이 파타야로 모였는지 빈방 찼기가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도보 5분 거리에 한 호텔을 찾았다. 나는 얼른 또 토하고 싶었기에 전용 화장실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는데,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방이 아늑하고 좋았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푹 자고 나서야 간신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일어나서 조심스레 동네 번화가를 산책해 보았다. 어제보단 한결 나았지만 길가에서 치킨 굽는 냄새가 풍겨오자 구역질이 확 올라온다. 평소 같았으면 군침을 흘렸을텐데..지금은 밥 한 숟갈도 당기질 않는다. 맘대로 먹질 못하니 서럽다. 그 때 '미니카페'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번화가 한쪽에 자리한 아담한 커피숍이었다. 들어가서 붑커를 위한 에스프레소와 나를 위한 따뜻한 레몬티를 주문했다.
음료가 보이도록 좀더 잘 찍어볼걸 그랬다.레몬의 산미가 입맛을 조금이라도 되살려주길 바라며 한모금 들이켰다.
나>> 우왓. 이거 대박.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진한 레몬맛이 침샘을 마구 자극했다. 대체 몇개의 레몬이 들어갔는지 궁금해진다. 레몬청으로 우려낸 차와는 다르게 달지도 않아 내 입맛에는 딱이었다. 나는 단숨에 한잔을 비워내고 한잔 더 주문했다. 그렇게 두 잔을 연달아 마시니 뱃속이 아주 편해졌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데려가고 싶은 맛이다. 아쉽지만 데려갈 순 없어 우리는 파타야에 있는 동안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 카페를 찾았다. 파타야를 떠나올 때 두고오기 가장 아쉬웠던 미니카페 레몬티. 이곳을 오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언덕배기 전망대에 오르면 파타야의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한낮 쨍한 햇볕이 내리쬘 때, 석양이 질 즈음에, 달이 뜬 후에. 시시각각 다채로운 바다의 색은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무더운 날씨에 움직이기 싫을 때는 해변의 비치베드를 빌려 파라솔 밑에서 주스를 홀짝홀짝 마시면 더위가 주춤한다. 오후 5시 무렵 바다는 주황빛 보랏빛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주인 아저씨께서 해넘이를 잘 감상할 수 있도록 파라솔을 걷어주신다. 우리는 눈을 반쯤 감고 느긋하게 누워 발 아래로 찰랑이는 바다물결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하루는 도심에서 바이크로 30여분 떨어진 곳에 있는 특별한 불상을 보러 갔다. 규모가 거대하여 멀리서부터 불상이 눈에 들어온다. 공원에 난 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큰 바위가 나오고, 바위의 한면에 금으로 새긴 웅장한 부처님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https://goo.gl/maps/w142FrkEcbbBBYDr5
젤라바를 입고 썬글라스를 끼니 갑자기 석유부자가 된 붑커. 모로코 전통의상인 젤라바가 불상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태국은 국민 대부분이 불교를 믿는 나라답게 어딜가나 빅부다를 볼 수 있다. 파타야에도 빅부다가 있는데 황금절벽사원과는 또 다른 매력의 불상이다.
https://goo.gl/maps/747cSDC8SNEEw4RS8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파타야의 빅부다 사원.
파타야의 밤거리는 소란스럽다. 워킹스트릿은 방콕의 카오산 로드보다도, 푸켓의 빠통비치보다도 한층 더한 유흥의 장소이다. 우리는 큰 관심이 없어 기념사진만 찍고 빠져나왔다.
걷다보면 귀여운 아이디어로 장식된 노점과 길거리 주점들이 이목을 끈다. 며칠전 배탈이 났던 터라 술 한잔은 못했지만 태국 볶음국수인 팟타이도 맛보고 생과일주스도 한컵 마셨다.
파타야에서의 마지막 날. 버스를 타고 방콕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파타야에 도착한 날에는 택시에서 다 죽어갔었는데 오늘은 여느때보다도 컨디션이 좋다. 아마도 다음 여행지를 향한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다리도 좀 쉬어준다. 배낭여행의 장점 중 하나. 배낭을 발베개로 쓸 수 있다.
여행의 첫머리를 멋있게 장식해준 태국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서 첫 비행기를 탈 때의 설렘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다음 나라에서는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잡담-
방콕 시내버스에서 희한한 하차벨을 발견했다!
-다음이야기-
두 번째 여행지. 그곳은 어디?
힌트는 사진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