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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y 25. 2023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지난 겨울, 남편은 한국어 공부를 위해 사회통합프로그램 교육과정을 신청해서 다녔다. 지금은 일한다고 바빠서 잠깐 쉬는 중이지만, 직장에서도 생활 한국어를 배워오곤 한다.


하루는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영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붑커>> 힘둬러.

나>> What? 

붑커>> 힘~둬러.

나>> 아?! 힘들다고? 우와 어디서 배운거야?

회사에서 동료가 '힘들어 힘들어~~' 하는 걸 듣고 배웠다고 한다.


또 한번은 저녁을 먹는데, 다 먹고 숟가락을 놓으면서 하는 말이,

붑커>> 다해써여~

나>> 응?

붑커>> 다해쓰여~

아, 알았다. 다 먹었다고 하는거구나.

회사에서 일을 끝내면 다했어요~라고 한다는 걸 배운 것이다. 밥을 다 먹고는 '다했어요' 하니까 마치 음식을 다 해치웠다고 하는 것처럼 들려 너무 웃기다. '다 먹었어요' 라고 하는 게 맞지만 응용하려는 시도가 좋았기에 따봉을 날리며 You are very smart라고 칭찬해줬다.


한국어를 할 때의 오류는 남편을 좀더 귀엽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남편이 한국말 중에 처음으로 배운 말은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가 아닌 '화장실 가고 싶어요'였다.  

어느 날은 남편이 갑자기

붑커>> 화장쉴 주쎄여.

나>> 네..?

붑커>> 화장쉴~ 줏쎄여~!

며칠 전 '이거 주세요', '이거 하고 싶어요'를 연습했는데 그 두가지가 머릿속에서 섞인 것이다. 나는 낄낄 웃으며 다시 설명해준다. 남편은 내 웃음 보따리다.




남편 말로 한국어는 배우기 쉬운 언어는 아니라고 한다. 초반에 아야어여를 가르쳐 줄 때였다.

나>> 한국어는 이것만 알면 쉬워져.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 해봐.

붑커>> 아야오요오요오요오이?

그렇다. 한국인인 나에게 오우어, 어오우, 어우오는 모두 다르게 들리지만, 남편에게 '오'와 '우'와 '어'를 구별하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 아니, '오'랑 '우'랑 '어'가 왜 똑같이 들려?

붑커>> 똑같이 들리니까!

오 마이 갓..



아랍어에는 '디귿'과 비슷한 발음을 내는 여러 글자가 있는데 제각기 소리가 다르다. '더' '떠' '둬' '드-어' 'thㅓ'... 나는 아직도 이 미묘한 소리의 다름을 알아채기 어렵다.

나>> 더! 떠! 드어-! 이걸 다 어떻게 구분해..? 아랍어에 비하면 한국어는 얼마나 쉬워. 그치? 아야어여오요우유!  

붑커>> 아야오요오요오요.

나>>....            

어려움은 상대적이다. 남편에 아야어여를 구분하는 게 나에게 있어 더떠둬thㅓ를 발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조금 이해가 간다.  




어제 남편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 이제 '오'와 '우'의 차이를 알 것 같아."

오~ 대단한데!

나는 자랑스러우면서도 내심 아쉽기도 하다. 언젠가 남편의 한국어가 너무 유창해지면 내 웃음 보따리 하나가 사라지는 건데.


그 날 저녁, 집에서 바나나와 키위를 넣은 크레페를 만들어 먹었다.  

나>> 어떤 거 줄까? 바나나? 키위?

붑커>> 아무거나 줘. 둘 다 좋아. 고기고고.

고.. 고기, 뭐라구?

붑커>> 고기고고. Same same.

아! '그게 그거'?

얼마 전 '그게 그거'라는 말을 알려주었는데 이렇게 써먹다니.

나는 남편이 한국어를 잘해서 아쉬울 날은 아직 멀었구나 생각하며 푸학학 행복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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