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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Apr 23. 2023

Eid mubarak said(행복한 이드 되세요)!

드디어. 드디어!!! 길고 긴 라마단이 끝났다. 야호!!!

하.. 정말이지 한국에서의 라마단은 마라톤과 같았다. 모로코에서 했던 금식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왜냐하면 이슬람 국가는 라마단 기간에 모든 생활패턴이 금식에 맞추어 변하는데 한국은 그런게 없기 때문이다.

모로코의 라마단에는 조금 늦게 출근해도 서로서로 그러려니 하고 퇴근시간도 앞당겨진다. 사실상 업무 강도가 확 줄어드는 이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가 아닌 한국에 그런게 있을리가. 쫄쫄 굶으면서 일은 일대로 해야하는 '저혈당 쇼크 주의보' 상태에 놓인 것이다.

솔직히 올해는 금식하지 말고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자고 하고 싶었다. 종교도 중요하지만 일단 살고 봐야지..! 휴..근데 또 나랑 결혼해서 산다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낯선 나라에 정착한 남편을 생각하면 이게 쉽지 않았다. 모로코 냄새도 그리울테고 식구들도 보고 싶을텐데 30년 동안 지켜오던 종교의식마저 못하게 하면 내가 좀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드는거다. 그렇다면 남편만 금식하도록 냅둘까? 휴.. 하지만 한집에 살면서 어떻게 나만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쌩쌩하게 출퇴근할 수 있겠나. 의리가 있지. 혼자 굶는 것보다 둘이 굶으면 그나마 덜 서러울텐데. 울며 겨자먹기로 작한 금식이었다.


그리고 언제 오려나 오긴 하려나 싶었던 그날. 2023년 4월 22일. 달력에 표시해가며 손꼽아 기다린 날, 'Eid(이드)'. 그날이 왔다.


"Eid mubarak said(이드 무바라크 사이드)."

"행복한 Eid(라마단이 끝나고 금식이 풀리는 첫날) 보내세요." 라는 인삿말이다.

얼쑤! 덩실덩실 탈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이지 우리 둘 다 고생 많았다. 흑흑.. 근데 신기했던 건 역시 인간의 적응력이란 무궁무진하다는 것. 라마단 초반 며칠은 정오만 지나면 배가 요동을 치면서 밥달라고 난리였는데, 금식한지 한 열흘 정도 흐른 시점부터는 뱃가죽이 등가죽과 사이가 많이 좋아져서 텅빈 위장으로도 어찌어찌 버티긴 하겠더라. 이제 다시 아침도 먹고 점심도 먹을 수 있다니 신나면서도 그새 금식에 익숙해져서 지금은 해 떠있는 동안 음식을 먹는게 약간은 어색하다.

이드 아침 예배를 드리러 간 우리 동네 작은 이슬람 사원에서.
사원 내부에는 작은 식당이 있어서 방문객들에게 간단한 끼니를 제공해준다.

모로코 가족들과도 이드를 축하하며 영상통화를 했다. 그런데 가족들이 남편에게 하나같이 묻는다. "와이프 줄 선물은 준비했어?"

엥. 나 뭐 잘했나. 웬 선물?

알고보니 첫 금식을 해낸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근데 저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모로코에서 처음으로 했고 이번은 두 번째예요 하하."

그래도 아니란다. 한국에서의 첫 라마단이기 때문에 선물을 받아야만 한단다. 그리고 라마단 내내 이프타르(breakfast) 식사를 준비한다고 애쓴 아내의 노고를 생각하여 끝날때는 항상 선물을 준다고 한다. 오우 이런 아름다운 문화는 꼭 지켜야 해. 저야 대환영이죠. 근데..

"사실 라마단 내내 붑커가 대부분 요리했는걸요.."

그리하여 사이좋게 선물을 하나씩 주고받기로 했다. 일단 나는 새 드로잉 태블릿을 사달라고 해야지 호호. 그리고 다음 라마단에는 내가 요리할래!


군산 이성당 빵집에서.

이드 날에는 너도나도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어딘가로 소풍을 가서 특별한 시간을 보다고 한다. 우리도 이드를 맞아 드라이브도 하고 빵집 데이트도 하면서 오랜만에 배고프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배도 고파봐야 부른 것을 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나누어 진다는 라마단의 의미를 제대로 되새긴 한달이었다. 인내 뒤에 찾아오는 보상은 더욱 달콤한 법이다. 2023년의 라마단은 아주 매운맛이었지만 그 뒤에 찾아온 이드는 힘들었던 만큼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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