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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12. 2023

비 오는 날의 전주 한옥마을

남편과 나는 종종 같이 앉아 옛 사진 보기를 좋아한다. 결혼 전 2019년 겨울, 남편이 우리나라에 놀러 왔을 때 전주에 살고 있던 우리가족은 동네에서 가장 한국적인 걸 보여주기 위해 남편과 함께 한옥마을에 갔었다.  때 거닐었던 경기전에서의 사진을 남편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조선 태조의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 (잠깐 딴 얘기지만, 엄마아빠가 요즘도 자주 하시는 말씀이 나보다는 붑커가 엄마를 더 닮았다는 건데, 이 사진을 보니 정말인 것 같다..)


결혼 후에도 남편과 한옥마을을 산책하러 전주를 몇차례 찾았다. 최근에 갔던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편은 비가 오는 날의 한옥마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내가 보아도 그랬다. 비에 씻겨 청량해진 공기에 기와집들이 한결 선명해지고, 단비를 맞은 담장 아래의 수풀이 파릇파릇 살아나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졸졸 흐르는 빗물 소리가 걷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배경음악처럼 잔잔하게 깔려 치를 더해주기도 했다.


한옥마을에서 전주 교대쪽으로 걸어가면 전주천을 만난다. 징검다리를 건너 고개를 들면 비 온 끝에 운무에 싸인 남고산과 치명자산이 마을을 포옥 감싸안은 모양으로 다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나무 향기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다. 분명히 비가 와서 공기가 한층 쌀쌀한데도 따뜻한 기분이 든다. 전주에 오면 늘 그렇다. 푸근하고 안정적인 느낌. 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워진다. 전주의 '전' 자는 온전할 전을 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전주는 예부터 자연재해가 드물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일까? 아니, 아마도 그보다는 고향에 가면 으레 느끼는  냄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전주천에 놓인 징검다리. 어린시절 큰 보폭으로 뛰어 건넜던 정겨운 돌다리를 지금은 그리 크지 않은 보폭으로 걸어 본다.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가장 빼어난 경치를 가진 곳이라기 보다도 가장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장소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고 자란 나의 모든 기억을 담고 있으면서 4년 전 남편과의 추억을 새겨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전주가 나와 남편에게는 가장 특별한 장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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