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친구로 지내던 시절,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붑커가 우리집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붑커는 일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당시 나는 타지에서 일하고 있었고 휴가를 내기 어려웠어서 일주일 내내 같이 있진 못했다. 그렇게 붑커와 우리 부모님만 같이 있게 되는 시간이 생겼다.
결혼 후에 남편이 말하길 그 때 사실 좀 섭섭했다고 한다.
붑커>> 생각해봐. 모로코에 너 혼자 왔는데 내가 가족들하고 너만 남겨두고 일하러 가버렸어. 그럼 얼마나 어색할거야, 그치! 나는 너 모로코 왔을 때 3일 휴가냈었는데 힝.
나>> 미안미안. 그땐 정말 어쩔 수 없었어.
그래 나라도 엄청 섭섭했겠다. 당황스럽기도 했을테고. 그때 조금 무리해서라도 휴가를 써볼걸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치만 이런 남편의 귀여운 토라짐이 무색하게도 남편은 그 때 엄마아빠랑 잘만 놀러다녔다고 한다. 물론 내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거라고 하지만.
엄마아빠와 갔던 곳 중 마이산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는 남편. 남편이 마이산을 방문한 날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산의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폭포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맑고 건조한 날에는 보기 어려운 귀한 장관을 볼 수 있었다.
그림같은 마이산 탑사의 절경.
나는 어려서 마이산에 가본 뒤로 안가본지 꽤 됐다. 맑은 날에만 가봐서 남편처럼 비오는 날의 풍경도 보러가고 싶어졌다. 마침 지난주에 비가 내려서 이때다 하고 마이산 탑사에 가게 되었다.
둘이서 처음으로 같이 온 마이산.
작은 돌탑 위에 돌 하나를 얹고 부자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음에도 그동안의 오랜 가뭄 탓인지 폭포는 없었다. 그래도 절벽을 타고 실오라기처럼 떨어지는 물줄기는볼 수 있었는데 그도 나름대로 멋이 있었다. 졸졸 내려오다가 땅에 채 닿기도 전에 허공에 흩뿌려지는 물방울이 뿌연 안개를 만들면서 절과 돌탑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었다.
탑사에서 내려가기 전, 방문객들이 여기저기 쌓아둔 돌탑 위에 우리도 돌 하나를 보태본다.
붑커>> 신기하다. 돌이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야. 설마 여기는 다른 땅보다 중력이 강한가?
나>> 에이 설마. 근데 진짜로 잘 쌓아지네.
흉흉한 세상이 바로잡아지길 바라는 염원으로 지어진 탑사라 그런지 묘한 영력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우리 둘 다 돌을 하나씩 쌓고 기도를 올린다.
나>> 뭐라고 빌었어?
붑커>> 당연히 부자되게 해달라고 했지 하하!
농담이고. 백년이 넘도록 궂은 날씨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돌탑처럼 우리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도 남편도 우리 가족들도, 그리고 여러분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