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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l 16. 2023

모로코 남편의 한국 조기축구 입문기 1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기능이 생긴지도 꽤 되었다. 어느 날은 별 생각 없이 사람들이 어떤 주제들로 채팅방을 만드는지 슥슥 구경하고 있었다. 순간 반쯤 내려와 있던 내 눈꺼풀을 번뜩 치올리는 채팅방이 있었으니,

축구용병방입니다

방 이름은 이러했다. 남편이 항상 공 차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거다 싶었다. 근데 용병이 무슨 뜻이지.. 냥 막 들어갔다 나왔다 해도 되는 방인가? 몰라 일단 들어가 보자.

채팅방 입장!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 공지부터 읽어보았다.

"닉네임에 상/중/하 로 본인의 실력을 표시.. 선출이신 분들.. 실력을 속이고 용병을 가시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덜덜덜. 여기 엄청 잘하는 사람들만 모이는 방인가? 닉네임에는 사는 지역과 나이, 실력을 표시해달라고 하는데.. 남편과 상의해봐야겠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축구 카톡방에 대해 얘기해줬더니 무척 좋아했다.

붑커>> 나 실력 상이지 상!

나>> 그래? 오케이, 그럼 상으로 가자.

오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데? 남편이 제대로 축구를 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래봬도 모로코 출신이니까. 모로코도 브라질 못지 않게 축구를 사랑하는 나라이고,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 4강도 갔던 나라가 아닌가. 그렇게 닉네임에 당당히 '상'을 달아놓았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스케줄과 시간이 딱 맞는 톡이 하나 올라왔다. 일요일 오전 9시, 전주. 용병으로 뛰고 싶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바로 문자를 날렸다. 외국인이라 간단한 한국말만 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축구 실력이 좋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다. 


칼같이 답장이 왔다. 와도 좋다고 하셨다!

드디어 남편의 바람이 성취되는 순간이 오는구나.

일요일 아침. 각자 설레는 맘으로 가방을 챙겼다. 남편은 축구화와 갈아입을 옷을, 나는 수영복과 수영모를. 구가 끝나면 전주의 큰 수영장에 가서 샤워도 하고 물놀이도 할 계획이었다. 난 요새 수영에 점점 더 재미를 붙여가는 참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 여보야. 수영이 더 재미있어, 축구가 더 재미있어?

붑커>> 당연히 축구지! 축구는 스트레스 날리는 데 최고라구.

아, 그랬구나. 사실 난 공으로 하는 운동엔 별 흥미가 없어서 남편이 축구를 이정도로 좋아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에 부지런히 알아볼걸. 지금부터라도 앞으로 매주 축구를 하러 가야겠다. 나에게 수영의 즐거움을 알려준 게 남편이니까 나도 그에 보답하고 싶다.


우리는 아침을 든든히 챙겨먹고 곧 전주 완산구장에 도착했다.



다음편에 계속..


* 축구 용병이란 팀에 속해 있지는 않으나 인원이 필요할 때 게스트로 와서 경기를 뛰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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