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시티에서 오슬롭으로

신혼여행기 #19

by 소울메이트

필리핀의 동네버스는 장난감처럼 귀엽게 생겼다. 많은 사람이 탈 때는 몸을 욱여넣어 서로 닥다닥 붙어 앉아야 탈 수 있다. 부 터미널에서 시내로 이동할 때 택시를 탈 수도 있었지만 이 버스를 안 타보면 서운할 것 같았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엉덩이를 겨우 걸치고 앉았다. 불편하긴 했지만 세부의 동네 주민들과 무릎을 맞대고 버스를 타보는 이런 소소한 일도 여행의 재미 중 하나다. 내릴 정류장에서 미리 기사님께 말하고 출입문에 서 계시는 분에게 돈을 드린 뒤 내리면 된다. 천장이 낮아 허리를 숙이고 조심조심 내려야 한다.


필리핀의 역사가 담긴 산 페드로 요새. 스페인 식민지배 당시 만들어졌다.
산토니뇨 성당. 크리스마스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로 야외까지 가득찼다.
메트로폴리탄 성당

세부시티는 큰 도시였다. 커다란 빌딩과 세련된 쇼핑몰, 게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중심가는 더욱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번화가를 조금만 벗어나 그늘진 골목으로 들어서면 파리가 꼬이는 쓰레기 더미 옆에 아무렇게나 웅크려 자고 있는 사람, 해진 티셔츠를 입고 하수가 흐르는 천변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불과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명품 쇼핑백을 양손에 가득 든 사람들이 백화점을 드나든다. 우리는 씁쓸한 침만 삼켰다. 세부시티를 서둘러 떠나왔던 데에는 이런 불편한 현실을 보고도 당장 어찌해 볼 수 없는 무력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다.



헉.

세부섬 남쪽의 오슬롭이라는 지역 고래상어를 만나러 관광객들이 모여는 곳이다. 세부시티에서 바이크로 시간은 족히 달려야 도착한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이왕이면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고 싶어서 바이크를 빌렸다. 오슬롭으로 가는 해변도로는 듣던대로 아름다웠으나, 해변까지 나가는 길에는 수많은 차들로 복잡한 도로를 달려야 했다. 오슬롭에 도착했을 땐 사방에서 차들이 뀌어낸 매연으로 얼굴이 시커매져 있었다. 앞유리가 있는 헬멧을 쓴 남편의 얼굴은 깨끗한데 나만 연탄재 사이에서 뒹군 듯한 얼굴이 되었다(필리핀에서는 바이크 운전자는 반드시 앞유리가 있는 헬멧을 쓰는 게 규칙이라고 한다). 남편이 깔 웃으며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기 전까지는 까맣게 몰랐다.




장시간 도로를 달렸더니 목이 탄다. 갈증 해소에는 수박이 최고다. 마트에서 커다란 수박 한 쪽을 사서 나눠 먹으니 기운이 솟는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해변으로 나갔다. 8시 반쯤이었는데 이정도면 우리에겐 아주 일찍이었으나 이미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 앞에 대기 중이었다. 다들 새벽에 일어났나 보다..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를 신청해서 가는 분들은 이른 시간에 해변으로 모이도록 안내를 받겠지만 혹시 우리처럼 개인적으로 가는 분들이 계시다면 가능한 일찍 가서 번호표를 받으시길 추천한다.

2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고래상어가 있는 바다로 나갔다. 열두어명 정도가 작은 배에 타고 이동한다. 해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약간만 나가도 벌써 고래상어의 커다란 등이 배 밑으로 보인다. 입도 지느러미도 거대한 고래상어는 보기와 달리 온순해서 같이 헤엄도 칠 수 있다.

상어를 뒤쫓는 붑커.


투말록 폭포는 고래상어를 보는 해변 바로 근처에 있어서 상어투어를 끝낸 사람들이 다음 코스로 많이 찾는 곳이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수가 모여 은은한 푸른빛을 내는 우윳빛깔 물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물줄기 뒤로 보이는 물이 깨끗하면서도 우유를 탄 듯한 색인 이유는 석회가 많아서이니 마시면 안된다. 이 폭포수는 굉장히 차가워 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린다. 웅덩이가 깊지 않아 물놀이를 하기에도 좋다. 다만 물이 너무 추워서 그리 오래 있지는 못했다.


바닷물도 삼키고 땀도 많이 흘렸더니 또 시원한 게 당긴다. 오늘 하루도 달콤한 수박을 호로록 한입 가득 베어 물며 마무리 했다.

수박으로 치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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