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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Daehyun Nov 17. 2023

녀석들의 학교 탐험 - 3

"우리 너무 오래 있는 거 아이가?"     

그 말에 녀석들은 모두 일어났다.   

  

아쉬움.     

여학생들만의 공간을 언제 다시 와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교실 문을 나서는 녀석들의 움직임은 슬로우비디오 같았다.     


복도에 나와 올라왔던 계단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바로 그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짤랑! 짤랑!"     

녀석들은 직감했다. 그 소리가 뭔지.     

허리에 찬 열쇠뭉치가 계단을 오르는 다리의 움직임에 의해 서로 부딪혀 내는 소리. 바로 그 소리였다.     


그 소리는 조금씩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 클났다!"

"걸리면 어쩌지? 학교에 연락하는 거 아니가?"

녀석들은 낮은 목소리로 불안을 공유했다.

복도에 나온 녀석들은 작은 세숫대야에 옮겨놓은 물고기들처럼 우왕좌왕했다.    

 

다른 현관문은 잠겨 있다.

녀석들이 올라온 계단 쪽은 짤랑거리는 열쇠 소리가 올라오고 있다.

교실로 들어가기엔 퇴로가 너무 없다.

반대쪽으로 뛰기엔 너무 큰 모험이다.

녀석들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짤랑."     


"짤랑."          


"짤랑."     


"짤랑."     

거의 다 올라왔다!               

그 소리는 곧 계단 끝에서 코너를 돌아 녀석들이 있는 복도에 진입할 것을 알리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잠깐 멈췄던 소리는 이내 슬리퍼의 따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녀석들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어딘가에는 몸을 숨겨야만 했다.

"짤랑."

뭐라도 해야 했다.


"짤랑."

녀석들의 몸을 숨길만한 것은 없었다.

복도에는 나지막한 분필털이통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다.


"짤랑."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의지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녀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짤랑."

'거의 다 올라왔다!'


분필털이통 옆으로 나란히 한줄로 앉아 벽에 등을 붙였다. 몸을 최대한 웅크려 작게 만들고는 숨을 죽였다.


"짤랑."


'이게 안 보일리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녀석들은 스스로 한심하기도 했지만, 그것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짤랑."

"턱."

소리는 이제 계단을 다 올라 복도로 들어섰다.


복도 끝에서 소리는 잠깐 멈춰 서 있다.

녀석들을 보는 것 같다.


녀석들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복도 끝에서 잠깐 멈췄던 소리는 이내 슬리퍼의 따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녀서들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겨우 분필지우개털이통에 의지한 녀석들은 비 오는 날 좁은 지붕을 함께 우산으로 쓰고픈 가련한 어린 새들처럼 한껏 몸을 움츠릴 수 밖에 없었다.     

누구 하나라도 고개를 들었다가는 그 비를 다 맞을 것 같아 그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짤랑 따닥!"          


"짤랑 따닥!"          


그 소리는 녀석들이 움츠린 분필지우개통 바로 앞까지 왔다.          


"탁!"

소리가 멈췄다.     

녀석들의 숨도 멎는다.     

“흡!”

작은 숨소리라도 새어나가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녀석들은 숨을 참았다. 숨을 참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장은 더 크게 쿵쾅거리는 듯했다.     

어떻게든 어깨를 구겨넣고 고개를 숙여 몸을 작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녀석들의 모습은 마치 눈만 가리면 상대방도 자신이 안 보인다 생각하는 덩치 큰 망아지들 같았다.     


몇 초나 지났을까? 진공상태같은 시간이었다.     


"나와!"     

아저씨의 날카로운 외침!     


'아! 죽었다!'

녀석들은 동시에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고 모두 한 줄로 앉아 움츠리고 앉아 있다.     


"나와!!"

칼 같은 소리!     


녀석들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슬금슬금 무릎을 펴는 녀석들.     


최대한 아저씨의 눈에 얼굴의 절반 이상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는 아저씨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저씨 뒤로 두 줄을 맞춰 선다.      


'아이씨! 누가 들어오자 했노...?'

'아...! 집에 전화하면 우짜지?'

'학교에 연락하는 거 아이가...?'     

녀석들의 소리 없는 대화가 눈빛으로 이어졌다.     


"따라와!!"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     


아저씨는 위풍당당한 지휘관처럼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고 녀석들은 주춤주춤 두 줄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멋지게 사냥에 성공한 아저씨는 위풍당당하게 앞장서 걷기 시작했고, 녀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두 줄로 맞춰서는 아저씨의 등 뒤를 꾸역꾸역 따르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왠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 집에 전화하면 어짜노..'

'누가 들어오자 했노.. 종국이 아이가?'

'학교에 연락하는 건 아니겠지?'

녀석들의 머리 위에는 뒤늦은 걱정의 말풍선이 실에 메달려 둥둥 녀석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짤랑! 따닥! 짤랑! 따닥!"     

아까보다 더 커진 소리는 리드미컬하게 복도를 가득 채웠고, 녀석들은 그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한 10미터쯤 걸었을까? 제일 뒤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진희와 정재는 고개를 들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진희와 정재는 눈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입은 여기선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둘의 눈은 서로 열정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정재야! 우린 어떻게 될까?'

'맞제! 아... 죽었다!'     

'어! 정재야!'

'어? 진희야!'     

'뛰까?'

'뛰까?'     

둘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최악의 선택이 될 게 뻔했다. 둘의 눈은 현재 상황 파악에 나섰다.     

아저씨는 여전히 앞만 보고 걷고 있었고, 종국이, 민수, 병헌이, 광수는 뒷모습만 봐도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는 게 보였다. 둘의 눈은 서로를 찾아 손을 잡았다.     


'뛰자!'

'그래, 뛰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정재와 진희는 동시에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우다다닥!!"     

둘의 걸음아 날 살려라 소리는 순식간에 친구들의 걱정 풍선을 다 터뜨려 버렸다. 넷은 앞서 뛰는 정재와 진희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잡히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야! 이놈들아! 거기 안 서!!"

아저씨의 날카로운 소리가 녀석들의 귀를 잡아당겼지만, 녀석들은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었다.     


"어! 야! 야! 거기 서!"     

날카로운 목소리는 녀석들을 움켜쥐려 했지만 녀석들은 사자에게 쫓기는 얼룩말들처럼 앞만 보고 달려나갔다.          


'헉! 바닥이 미끄러워!'     

왁스 칠이 잘 되어 있는 여학교의 복도는 녀석들에게 더이상 감동적이지 않았다.     


녀석들의 눈앞에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코너가 보이기 시작했다. 직각으로 꺾여있는 계단 코스로 무사히 접어들기 위해서는 달리는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지나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뒤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미끄러지면 끝이다!'     

가장 앞서 달리던 진희의 눈에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꺾이는 계단의 난간이 들어온다.     


"탁!"

진희의 오른손이 난간을 움켜잡았다.     


"지이이익!"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진희의 오른손을 중심으로 몸이 90도로 원을 그리며 휘익 돌아간다. 다 돌았을 땐 거의 두 발이 다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진희는 바닥에 최대한 발바닥을 붙여 미끄러지며 속도를 줄이고 계단으로 날듯이 뛰어든다.     


"으...이이익!"

미처 난간을 잡지 못한 정재는 휘청거리며 제자리에서 런닝머신을 몇 번 타고는 후다닥 계단으로 날아든다.     

"좌아아악!"

"좌아악 탁 탁!"

뒤이어 달려오던 종국이와 민수 역시 미끄럼 코스를 무사통과하여 계단으로 뛰어들었다.     


병헌이와 광수는 예상치 못한 추격전과 왁스 칠한 바닥의 미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구원할지도 모를 유일한 희망인 계단을 향해 무조건 달릴 수 밖에 없었다. 둘의 모습은 투수 앞 땅볼을 치고 1루에서 슬라이딩하는 9번 타자처럼 간절해 보였다.     


"으아악! 익익!"

마음이 다리보다 먼저 뛰어나가는 통에 앞으로 큰절을 하며 넘어질 뻔했지만 둘은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고 달려나갔다.     


여섯 명의 악동들의 얼굴엔 이유 모를 웃음이 번져나갔고, 날듯이 뛰어 내려오며 계단을 타다닥 디딜 때마다 녀석들의 콧구멍에 매달린 누런 콧물이 대롱대롱 춤을 췄다.     


“크크큭”

여섯명의 도망자들은 비집고 나오는 웃음과 함께 바람처럼 날듯이 계단을 내려와 처음 겨우 낑낑대며 들어왔던 현관에 도착했다.     


밝은 햇살이 작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저곳으로 나가야만 한다!’     

슝 슝 슝 슝 슝 슝!     


낑낑대며 꾸역꾸역 들어올 때의 그 창이 맞나싶을만큼 녀석들은 바람처럼 그 작은 창을 빠져나갔다.     

줄줄이 소세지처럼 쏟아져 나온 녀석들은 금새 쇼생크를 탈출했던 팀로빈스가 되어 있었다.     


“이노무 쉐이들!!”

날카로운 아저씨의 목소리가 녀석들의 뒤를 이어 작은 창에서 삐죽 튀어나왔다.     


여섯 명의 팀로빈스들은 앗뜨거라하며 운동장으로 뛰어올라갔다. 운동장 옆에 녀석들이 평소 드나들던 개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나가면 아저씨가 쫓아오긴 힘들거라 생각했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개구멍을 빠져나온 여섯 명의 악동들은 분홍여자중학교의 경계에서 뛰어내렸다.     


“야! 너거 그 안 서나!!”

“으악!!”     

분홍여중에서 벗어났다 싶었지만 아저씨의 벼락같은 소리에 녀석들은 비명을 지르며 큰산전문대학교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녀석들을 쫓는 아저씨의 소리는 기관총이 되어 녀석들을 향해 난사되었고, 녀석들은 주윤발이 그랬던 것처럼 슬로우비디오 장면 속에서 그 총탄들을 유유히 피하며 뛰어갔다.


얼굴엔 승리의 웃음을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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