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절반쯤 지난 토요일 오후, 아무도 없는 집에 진희가 혼자 있다. 아버지 어머니는 모두 일하러 가셨고, 누나도 동생도 모두 나갔다.
진희는 누나 방에 슬쩍 들어가 카세트 테이프들을 살핀다. 오늘 선택한 앨범은 머라이어 캐리의 뮤직박스 앨범이다. 자기 방으로 돌아와 카세트데크에 넣고 플레이 버튼을 꾹 누른다.
“뚜 뚜루뚜 뚜뚜뚜~”
드림러버가 흘러나온다. 진희는 빨리감기 버튼을 눌러 테이프를 앞으로 돌린다. 플레이 버튼 꾹!
“애니타임 유니더 프렌드~ 아이윌비데어~”
다시 빨리 감기! 꾹! 플레이!
“나댓아노댓츄원미포미~ 아캐비와츄원~”
통통 튀는 리듬의 노래. 이제 다 왔다. 이 노래가 끝나면 그 앨범에서 진희가 제일 좋아하는 곡인 6번 트랙‘Never forget You’가 나올것이다.
진희는 의자에 앉아 음악을 온전히 느낄 준비를 한다.
익숙한 전주가 흐른다. 진희는 카세트의 볼륨을 더 크게 높인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진희 맘이다.
테이프통 안의 가사종이도 꺼내 펼쳤다.
‘난 당신의 미소를 볼 수 없을 거에요. 당신의 웃음 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거에요. ... 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지요. 당신에게 말하기에 너무 늦어버렸으니까요. 그러나 난 정말 당신이 알아주길 원해요. 난 당신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거에요. 내 마음 속에서 절대 당신을 보낼 수 없어요. 당신은 항상 나와 함께 있을 거에요. 내가 당신과의 추억을 꼭 잡고 있을 거에요.’
‘참! 누군지 몰라도 엄청 그리운갑다.’
“노~ 아 네버포게츄~ 아네버레츄~”
진작부터 감은 눈에 미간을 찡그리며 후렴을 따라 부르는 진희.
노래의 끝으로 갈수록 머라이어 캐리는 끝없는 고음으로 애드립을 하고 있다. 진희도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조금 남은 캐찹을 짜내려 캐찹통을 쥐어짜듯 허리를 숙이고 몸을 웅크려 누군지 모를 You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노래한다.
“노노노 노오~~ 아~ 네버포게츄! 아 네버레츄 아웃옵마하아!”
감정에 취해 슬쩍 떠진 눈.
‘어? 누가 있다?’
진희의 눈은 커졌고, 진희의 열린 방문 앞에 누나가 진희를 보고 서있다.
“흡!”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있는 시간, 1초.. 2초.. 3초..
누나는 절대로 웃으면 안되다는 미션을 부여받은 사람처럼 무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진희는 지난 1학기 과학시간에 뜨거운 물에 담근 알콜온도계처럼 발바닥부터 귀 아래까지 빨간 줄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약속이.. 취소돼서.. 집에 왔어! 음.. 텔레비전이나 봐야겠다!”
누나는 무대에 처음 오른 초짜배우처럼 어색하게 대사를 읊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진희는 자기 방문을 소리없이 조용히 닫았다. 그리고 장롱 문을 열었다. 가지런히 걸린 겨울잠바에 얼굴을 묻었다.
소리없는 아우성이 이런 것일까!
“끄아아아악!”
“삐리리리리리! 삐리리리리리!”
안방의 전화벨이 울린다.
“야! 이진희! 전화 받아라!”
누나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진희는 반응이 없다.
“야! 이진희!”
누나가 더 크게 진희를 부른다.
“왜?”
진희가 자기 방에서 대답을 한다.
“전화 받으라고!”
“누나가 받으면 되지…, 여보세요?”
진희는 빠른 걸음으로 안방으로 들어오며 투덜대고는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저.. 거기 진희 집 맞아요?”
처음 들어보는 여자애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