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 시 작 Apr 07. 2023

이것은 골프채인가? 헬맷인가?

- 내 눈엔 국자 -

얘는 요거트를 뒤집어쓴 내 친구 국자다.




우리 올케언니는 손으로 만드는 걸 즐긴다. 게다가 잘하기도 하고.

수세미에 앞치마, 가방을 만들더니 어느 순간 옷도 만들어주었다. 내 눈엔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더 좋은 건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사과콩포트, 요거트, 생강진액 등... 시간과 품을 들여야 완성되는 음식들이다.

그럼 나는 정성스레 만들어준 그 귀한 것들을 깨끗하게 손 씻고 정성 들여 먹는다.

재봉이나 손뜨개는 똥손인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그래도 음식 중 난이도가 낮은 만만해 보이는 것들은 가끔 시도한다.

애꿎은 사과 망치지 말고 그냥 먹자는 가족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잘게 썰어 콩포트도 만들고, 생강도 저며본다. 매끈한 자태를 기대했던 요거트는 완성품이 애매하다. 몽글몽글 요구르트와 부패의 경계선에 있는 요거트를 보고 고민하다 그냥 내가 다 먹어버렸다. 남몰래. 


30년 세월을 함께  한 국자의 변신 모습을 찍은 사진


아무튼 

제대로 된 품격 있는 요거트를 올케언니에게서 다시 공수받아 한 국자씩 가족들에게 배분한다. 한 방울도 아까운지라 국자 뒤통수를 숟가락으로 썩썩 긁다 내 친구의 변. 신.을 발견했다. 이 사진은 변신 후의 모습이다. 

이것은 골프채인가? 헬맷인가!

골프채인지 헬맷인지 어정쩡한 부캐를 가지게 된 뒷자태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이 친구는
29년 전 남대문에서 주종관계로 만났다.

집안일이 서툰 주인을 만나 바닥에 떨어지고, 밤새도록 냄비에 담가지고, 문 사이에 끼어 찍 소리도 못하기도 했다. 5톤 트럭 안에서 이리저리 구르기도 수차례 했다. 게다가 재작년 말엔 보름동안이나 타향(이삿짐 보관창고)에 보내져 제 역할도 못하고 오매불망 주인을 기다렸으니...지금 생각해도 절로 미안해진다.

작년 새해 첫날, 새로운 집에서 다시 만난 국자와 나는 어찌나 반가웠던지 모른다.


이렇게 이렇게 동고동락하다 보니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이젠 등도 굽고, 입고 있는 붉은 옷도 낡고, 삶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요즘은 왕 대접 해준다.

깨끗이 씻어주고 예쁜 집(?)도 사놓고~ 오래도록 같이 하고픈 마음에서다.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 진짜 사람이며 20년이 넘었다. 국자와 다른 점이라면 같은 학원 동료강사였다는 것이다. 공통점은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젠 친. 구.가 됐다는 것이고.


아주 오랜만에 만난다 바로 오늘. 그간 뭐 하고 지냈는지 궁금하다. 사는 얘기 다 비슷할 수도 있지만 그만의 서사와 서정이 녹아있기에 언제 들어도 스며든다. 오늘은 내가 밥을 사야겠다. 이 친구들과도 오래도록 같이 있고픈 마음에 말이다.


그리고 내 친구 국자 사진도 보여줘야지.

이전 05화 비둘기와 함께 뜬금없는 사색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