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은 필요한 -
비가 잠시 쉬었다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오후 나 역시 우산을 가져갈지 말지를 고민하다 주춤거리며 제일 작은 녀석을 하나 챙겨 나왔다.
멀리 가는 건 아니고 슈퍼 가는 길이다.
먼발치서 비둘기 세 마리가 원을 그리다 한 마리씩 착지한다. 태연한 척 했지만 숨죽이며 옆으로 다가간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자세를 보아하니 세 마리가 모두 무언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궁금해서 옆에 앉았다. 생각보다 담대하다. 살금살금 다가온 게 무색할 정도다. 요즘 비둘기는 잘 피하지도 않고 겁도 없다. 이 비둘기란 녀석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한결같이 언제나 초보라는 걸 안다는 냥 '나를 피해 가시오' 하는 거만한 자세로 뒤뚱거리며 내 운전을 시험하기도 하니 말이다.
아무튼
내 자세가 좀 웃기긴 하나 최대한 얘네들과 눈높이를 맞추려 애쓴다.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면 살짝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비가 올 것 같은데 어디에서 비를 피하지?'
'날도 더워지고 나는 것도 힘들고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근데 이 아줌마는 왜 우리 옆에 앉아있지?'
뭐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려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애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나 역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별 뜻 없이 잠시 쉬는, 우연히 줄 맞춰 앉게 된 비둘기에게 지나친 의미부여라 할 수도 있지만,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재미도 은근 쏠쏠하다.
방바닥 벅벅 긁을 만큼 심심할 때 아님 머릿속이 무지막지하게 복잡할 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그리고 행동이 오히려 신선하고 재미있을 때가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