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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희 Jan 12. 2023

상처받은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유난히 끌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

왠지 모르게 끌리는 사람이 있는데, A가 그랬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았고 방송국을 오가면서 만났다. A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날에만 만날 수 있다 보니,  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는 일터인 방송국이 아닌 밖에서 따로 만나자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내가 전형적인 아나운서들이 갖고 있는 성향과는 좀 다른 성향의 사람인 것 같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그들과 어울리려 해도 '나름의 노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조금은 지쳐 있었다.


A는 종종 내 눈을 마주 보고 "도희야, 너는 지금 있는 그대로 충분히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야."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조금은 낯간지러운 말처럼 느껴지면서도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좀 자주 울컥했다.




A와는 서로 방송국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는데, 지난해 결혼 소식을 여기저기 알리면서 다시 연락이 닿게 되었다. A는 사정이 있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 핑계로 A와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된 것이 너무 기뻤다. 7-8년이 흘렀는데 우리는 시간의 공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이야기꽃을 피웠다. A는 그 사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나는 변호사가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 중 A가 갑자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2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을 찾아와 매우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했고 이유 없이 당하고 참아야만 했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잊고 잘 살아간다고 믿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때의 기억들이 다시 떠올다고 했다. 요가를 좋아하고 수행을 위해 인도까지 간 A에게서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놀라웠고 왜 그렇게 내가 A에게 끌렸는지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중학교 1학년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육체적 물리적 폭력은 없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진지하게 매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골몰했다. 괴롭힘을 주도했던 사람은 2명이었는데, 신OO과 김OO 아직도 이름이 또렷이 기억난다.


처음에는 이유를 물어봤던 것 같다. 나의 어떤 면이 마음에 안 드는 거냐고. 그 당시의 나는 마음에 안 드는 면이 있다면 고쳐보려는 노력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냥 재수 없어"였다. "잘난 척하지 말아라." "나대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좌절스러운 시간은 방관자들이 조력자로 변하는 순간들이었다. 내 앞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걱정해 주는 표정을 지었던 OO험담하는 내용을 화장실에서 듣게 된 순간이라든지,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배제되지 않으려고 그랬다던 OO가 웃으며 좋아했던 모습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인간은 어쩌면 순수하게 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시기, 참 많은 심리학 책들을 붙잡고 읽고 또 읽었다. 태연한 얼굴로 악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니...


요즘 인권침해 예방교육과 성희롱 성폭력 예방교육 강연을 종종 하는데, 강연을 준비하다가 '피해자가 스스로를 탓하며 자책하는 심리는 안전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안전에 대한 욕구가 있고 이는 자신의 환경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문제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하지 않았더라면, --- 했더라면 좀 달랐을까? '라는 생각의 뿌리는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않아도 돼, 도희야" 지금의 신랑이 남자친구였을 때 나에게 해준 고마운 말 중 하나.

'애써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 고유정에 대한 기사를 읽고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꽂혀 하루 종일 여러 기사를 탐독하고 있던 나에게 무심히 툭 건넸던 그 말이 나는 무척 고마웠다. 본래 나는 내가 숨 쉬는 세상 속에서 만나고 부딪치는 모든 사건, 존재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했고 그건 나쁜 일도 마찬가지였다. 내 식대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종종 그 물음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냥 그걸 놓아도 된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고 이야기해 주었으니 고마울 수밖에... 살인범의 심리를 어떻게 내가 이해할 것인가... 그렇게 차차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세상도 이해가 되지 않은 채로 놓아두는 연습을 해나갔다.




학교 1학년의 마지막 날은 내년에 자신이 어느 반으로 가는지 알게 되기 때문에 무척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나를 줄곧 괴롭히는 역할을 도맡아 했던 김OO과 다른 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쉬는 시간, 운동장 바닥에 쌓인 눈을 모아 온 것인지, 김OO이 차가운 눈을 내 목덜미에 갖다 대며 내 옷 속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내년에는 더 이상 같은 반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 김OO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이전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않았던 나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김OO은 당황했고 멀리서 "담탱 온다"는 소리에 마구 엉켜있는 나와 김OO을 떼내려 주변 사람들이 달려든 덕분에 내 머리칼은 아직도 내 머리에 붙어있다.


"그렇게 한번 크게 머리채 잡고 싸울 용기를 냈기 때문이구나, 넌"

A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래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끝끝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는 말도 함께.


"'피해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사명처럼 이해시킨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는 김은숙 작가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조만간 A를 만나면 우리는 또 무슨 이야기로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볼까.




덧붙이는 말. <더 글로리>를 다 보았는데, 대사들이 인상 깊었어요. "사과하지 마. 넌 벌 받아야지.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 학교폭력을 그리는 장면들은 정말 마음이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사범대에 갔던 제가 아나운서의 꿈을 품게 되지 않았다면 신OO과 김OO의 아이를 학교에서 가르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어요. 드라마에서만큼은 폭력으로 상처 입은 동은이의 오랜 고통을 가해자들이 몇 배로 느낄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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