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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형 Sep 30. 2022

feat. 부럽지가 않어


      가끔,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그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가 미치도록 부러울 때가 있어요. 예쁘고 멋있어서, 혹은 내가 좋아하는 남주와 파트너가 되어서는 아니에요. 아, 물론 그것도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것보다 좋은 작품에 출연하게 된 그들의 기회, 굴지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는 점, 그들의 값진 성과와 같은 그 이면의 것들이 너무 부러워요. 의미 있는 결과로 드러나는 그들의 경험이 갖고 싶은가 봐요. 아무것도 안 하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로 말이죠. 쩝. 이럴 때면 제가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져요. 난 뭐 하고 있지. 저들이 작품에 쏟아부었을 피땀 눈물은 외면하고, 정작 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성과만을 취하고 싶어 해요. 부럽다는 것은 그런 것 같아요.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장점만을 취하고 싶은 욕심 말이에요. 호두를 먹고 싶으면 호두껍질을 직접 까야하는데 말이죠.


아직 싱글인 친구들이 가끔 저를 부러워할 때가 있어요. '나는 네가 너무 부럽다. 나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애가 벌써 둘이야. 심지어 알콩달콩 살기까지 하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짝을 이루고, 아가 둘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는 한 여인네로 보일지도요.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겉으로 보이는 면만 보는 거죠. 사실 결혼 전에는 저도 그랬어요. 다만 저는 괜한 자존심인지 부럽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요. 그런데 말이에요, 평화롭고 아름다운 백조는 수면 아래에서 쉼 없는 발짓을 한다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남편과 싸우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두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기 위해, 너저분한 집이 되지 않기 위해, 하루 한 끼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를 9시 전에 재우고 육퇴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리 얘기해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할 거예요.


결혼 전, 너무도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낸 날이었어요. 엄마와 아무 일 없는 듯이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목소리만 듣고도 아셨나 봐요. '그런데 딸, 오늘 목소리가 좀 다르네.' 평소에 힘들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데, 그날은 왜인지 힘들다고 해버렸어요. '응, 오늘 좀 힘드네 엄마.' 이를 어째요. 힘들다는 말을 입 밖에 내뱉는 순간 눈에 눈물이 핑 고이는 거예요. 목이 메었죠. '엄마,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건 아닐까? 남들은 다 쉽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아.'


엄마는 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잔잔해질 때까지 가만히 듣다가 담담하게 말을 건네셔요. '많이 힘들었구나. 그런데 연아, 다들 그러고 살아. 네가 보기에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다 각자의 사정이 있어.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편안하게만 사는 것이 아니고, 부자라고 쉽게 사는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야.' 어떻게 보면 위로의 언어가 아니죠. 다그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희 모녀가 그래요. 객관적인 사실의 언어로 서로를 위로해요. 저에게는 오래도록 그 대화가 기억에 남아 있어요. 맞다. 각자의 몫이 있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들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이 저에게는 위로로 다가왔어요.


정말로, 쉽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단지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 봐요.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들의 삶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인지도요. 사정없는 사람은 없다고 하죠. 사정의 경중을 나름대로 따질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사정을 대하는 사람이 다르고, 태도가 다르죠.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도 물론 다를 것이고요. 그러니, 내가 부러워하는 어떤 이의 삶을 내가 흉내 낸다고 해서 그와 같은 결과가 내게 올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에요. 내가 저들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아마도 같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부러워하지 않으려고요. 지금 제게 있는 문제만으로도 복잡한데, 부러운 다른 이의 인생 한 줌 가져오면서 파생되는 문제까지 떠안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제게 주어진 상황을 헤쳐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애쓰고 있거든요.


가끔, 부럽다는 말을 하면서 상대의 선택과 책임에 대한 노력을 폄하하는 사람이 꼭 한 명씩 있더라고요. 호두는 먹고 싶은데 껍질을 제 손으로 까긴 싫은 거죠. 곧 있을 저의 복직 이후에 누군가는 제게 이런 말을 건넬 거예요. 실제로 결혼 전후로 이런 말을 듣기도 했고요. '좋겠다 너는 (여자라서) 육아휴직도 다녀올 수 있고. 여기가 여자들이 다니기 참 좋은 회사야 그지?' 그러면 저는 이렇게 화답하려고요. '육아휴직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진 제도인걸요. 저도 포기할 거 포기하면서 다녀온 거죠 뭐.'


저를 부러워하는 싱글 친구에게는 다른 부러움으로 화답합니다. '부럽긴. 나는 네가 부러워. 혼자 가고 싶을 때 운동도 맘 편히 갈 수 있고, 주말에 널브러져 하루 종일 딩굴거릴 수도 있고, 일도 편하게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고. 심지어 사회적으로 적당한 지위도 가지고 있네?' 아마 둘 다 알 거예요. 잔잔한 부러움이라는 수면 아래 힘차게 발길질하는 백조의 물갈퀴가 있다는 사실을요. 알지만 외면하면서 '네 잔잔한 호수 위에는 백조 한 마리가 우아하게 앉아있네.' 하는지도 모르죠.  


가수 장기하가 '부럽지가 않어'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 개도 부러워하지 않을래요. 드라마 속 주인공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고,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저도 값진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주어진 길 위를 성실하게 걸어야겠어요. 오리가 되면 어떻고, 참새가 되면 어때요. 뒤뚱뒤뚱 걸어도 좋으니 우리 같이 걸어가요. 꽥꽥 소리 내며 각자의 길을 걷자고요.


참새! 짹짹!

오리! 꽥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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