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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n 25. 2024

오도이촌은 낭만, 오촌이도는 신앙

 "고흥은 진짜 교통편으로 따졌을 때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에요."     


 고흥을 소개할 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중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땅끝'이라는 명성은 해남에게 빼앗겼지만, 고흥도 정말 해남 못지않게 멀다. 특히 교통 편의를 따지면 거진 확실하다. 고흥엔 KTX가 없어 고속버스가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는데, 대략 네 시간 반 정도 걸린다. 반면, 부산은 네 시간, 고흥 옆 순천은 세 시간 반 정도이다. 그마저도 KTX를 타면 둘 다 두 시간 반으로 줄어든다. 대망의 해남은 네 시간 오십 분이다. 하지만 고흥보다 고속버스 편수가 살짝 많다.     


 작년 봄, 재직하던 회사가 해양수산부 국책사업을 위탁받았다. 서울에 소재하고 서울에서 사업을 벌이던 작은 회사였는데, 어째서인 건지 고흥군과의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졌고, 졸지에 나는 이곳으로 파견됐다. 작년 칠월 한여름이었다. 사실 고백하건대, 처음엔 정말 내려가기 싫어 이리저리 버텼다. 하지만 당시 회사 상황에서 누군간 내려갈 필요가 있었고, 오랜 고민 끝에 그 적합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게 됐다. 그렇게 고흥으로 향하는 '대장정'의 씁쓸한 첫발을 뗐다.

 

서울에서 고흥 가는 길은 정말 멀다.


 처음 고흥으로 내려왔던 길은 밤차였다. 함께 파견된 상사의 자가용 조수석에 앉아 쌀쌀한 밤공기를 가르며 고속도로를 내리 달렸다. 휴게소도 슬슬 문을 닫는, 그런 늦은 밤이었는데, '춘향'이라는, 휴게소 이름으로는 매우 생소한 곳이 열려있었다.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 서울로 출가해 살아온 내가 도대체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탈 일이 뭣이 있었겠는가 말이다.     


 휴게소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잠깐 화장실, 편의점 따위에 들렸다가, 담배 하나 물고 까딱까딱하고 있는 사내들이 대부분이었다. 밤새 어디론가 줄행랑을 치는 건지, 아니면 팍팍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건지, 한창 사연 있던 남자에겐, 이곳에 함께 있는 모두 사연 한 두 개씩은 갖고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두꺼비 한 마리가 어둠을 틈타 휴게소 보행로를 엉금엉금 가로질러가고 있었다.     


밤늦게 춘향휴게소에서 만난 두꺼비. 우연이라기엔 인상 깊었다.


 고흥에 내려온 지, 십일 개월 남짓 지나가고 있다. 금요일 오후에 서울로 올라갔다, 일요일 오후에 다시 고흥으로 내려오는 '여정'도 어연 일 년이다. 어떤가. 서울과 가장 먼 곳이라는 고흥에 대한 소개가 나름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는가. 나는 떳떳하다.     


 주말마다 버스 안에서 무려 아홉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처음에는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거짓말처럼 요령이 생긴다. 버스에 올라타면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책을 읽는다.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기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덕분에 대학원 졸업 후 떨어졌던 '리딩폼'이 다시 올라온다.      


 또 다른 장점도 있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서울에 간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고, 매주 일요일이 되면 남도 끝자락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소멸위기의 섬마을로 투신하는 시공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일요일이 되면 대학동기들은 교회에서 세속과 구분된 시공간을 접하겠지만, 나에겐 재밌게도 고속버스가 교회인 셈이다. 밤늦게 고흥 원룸에 돌아와, 서울의 잔상을 안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 앞 바닷가에 서면,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진다.     


 말마따나 오도이촌(五都二村)은 낭만이지만, 오촌이도(五村二都)는 신앙이다.  


아직은 가라앉은 분위기의 오취마을 전경이다.


 덧글 하나. 고흥에서 일을 하다 보니, 실무자들 중 누군간 운전을 배워야 했는데, 여기서도 적합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역시 뭉그적거리다가 결국 장롱면허를 꺼내 법인차를 이리저리 몰았는데, 한창 재미와 자신감을 붙여가는 도중 기어코 인생 최초의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순천완주고속도로의 밤길을 함께 달렸던 상사의 자가용 문짝을 찌그러트려버린 것이다.     


 덧글 둘. 일 년이 지난 지금, 동료 중 나만 자가용이 없다. 중고차라도 얼른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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