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 Jun 21. 2024

다시 원룸으로 돌아왔다.

들어가며.

 여섯 시 오십 분, 알람에 깬다. 블라인드 사이로 아침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작은 원룸이다. 그래도 내 나이가 서른여섯 살인데, 아직도 원룸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침마다 살짝 무기력하다. 직원이 다섯 명을 채 넘지 않는 직장들을 전전하며 대학원 생활까지 했던지라 서른 살 초반 언저리쯤이었나, 원룸살이에 미친 듯이 신물이 났던 적도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그리 극적으로 변하진 못하는가 보다.


 출근은 해야 해서, 몸을 일으킨다. 그래도 피곤하다며 이불속에서 미적대는 습관은 젊음과 함께 두고 왔다. 나름 이른 시간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여유시간은 거의 없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버스도 하루에 일곱 대 밖에 없다. 터미널에서 일곱 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놓치면, 사무실에 들어가는 건 꼼짝없이 열 시 반이나 돼서야다.     


 사실 삼 년 전 청년행복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서울살이를 변변찮게 이어간 덕이다. 당시 공급되었던 공공청년주택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우수한 거주환경을 갖췄던 곳이었다. 살벌한 경쟁 속에서 예비번호를 뽑았고, 끝내 입주 자격을 거머쥐었다. 재개발이 되어 막 신축된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아파트였다. 화려하게 원룸살이를 정리했다.  


아침 일곱시 삼십분, 고흥시외버스터미널 풍경이다. 이곳도 어느 못지 않게 부지런하다.


 일곱 시 이십오 분,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무려 반경 20km 내 가장 활기찬 곳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역 내 유일무이한 교통 허브로, 통학, 통근, 통원을 하고자 하는 자, 모두 이곳을 경유해야 한다. 학생, 청년, 노인들이 서로 다른 버스노선들을 기다리고 있다. 중장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운전을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출발해온 버스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정각에 전후해 터미널로 밀려들고, 사람들은 뿔뿔이 버스에 올라탄다.

     

 이곳에서 가장 북적북적한 곳이건만, 서울에선 이보다 한산한 지하철역을 본 적 없다. 한 번도 내려 본 적 없는 서빙고역 같은 곳이 비슷할까? 추측해본다.

    

 '하오'라는 이름을 가진 노선버스에 올라탄다. 뭐. 매번 이 시간에 타는 사람들이 있다. 다섯 중에 둘은 친구 사이로 보이는 노인이다. 대화를 들어보니, 나라에서 제공하는 노인일자리에 다니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한 명은 중년여성인데, 노인들의 오지랖 덕택에 나도 귀동냥으로 그녀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복지관에서 일을 한다. 나머지 두 명은 아직 자가용이 없는 직장동료.  

   

 적당히 눈인사를 하고 착석한 후, 갤럭시 버즈2 프로를 귀에 꼽는다. 창가에 머리를 옆으로 박으니, 적당한 논밭, 적당한 산야가 창밖으로 흘러간다. 출근길, 잔잔한 바닷가가 나타날 즈음 버스엔 세 명의 승객만 남는다. 버스는 해변을 타고 돌다 별다른 구조물 없이 쌓아 올린 다리를 건너고, 버스정류장이름은 '신오', '상오' 순으로 변해가다, '하오'에 다다른다. 종점인 '하오', 보통 '오취마을'로 불리는 이곳이 바로 나의 직장이다.


같이 탔던 주민의 뒷모습이지만, 나의 모습과 똑같다.


 여덟 시 오 분, 하루에 일곱 번만 있는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놀랍도록 정확하게 시간을 엄수한다. 정류장에는 주로 병원으로 통원하고자 하는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계신다. 버스에서 내려 어르신들께 열심히 인사드리고 나면, 조그마한 어촌섬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깨끗한 공기, 잔잔한 바다 위의 윤슬, 계속 꿍얼꿍얼거리며 정박해 있는 통통배가 매일같이 날 반겨준다.

    

 고개를 처박고 앞사람 발뒤꿈치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올라가며, 아니 실상 인파 속에서 떠밀려가며, 속으로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분노가 실린 짜증을 차마 목 밖으로 내지 못해 삼키곤 했던 과거 지하철 출근길을 떠올리자, 살짝 탄성이 나온다. 그래. 그깟 원룸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집은 좁아졌지만, 모든 것이 넓어졌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오취마을 바닷가.


금요일 연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