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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Oct 17. 2024

선상, 공장과 교회 사이

( 05화 굴을 걸러 바다로 나가다. 전편과 이어집니다. )


 

 선상, 그 좁은 공간에 나름대로의 컨베이어가 생기고, 적절한 곳에 근로자가 배치된다. 설비도 크게 복잡하지 않다. 과거 손수 사용했을 법한 어구가 기계화된 정도에 그쳐 아날로그 한 분위기를 풍긴다. 분명 공장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배 위는 어느새 가내수공업이 이루어지는 작업장으로 변모한다. 역시나 '효율'이란 법봉은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그만큼 공장과 선상은 다르다. 모자 위로 느껴지는 뜨거운 태양, 시원 짭짤한 소금기 어린 바람, 파도에 위태로이 흔들리는 바닥, 자그마한 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본연적인 위험과 곱씹어지는 혈혈단신의 고독감. 이것은 분명 공장근로자가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한 줄을 끝내고 잠시 새참시간을 가진다. 고물에 둘러 모여 캔 맥주 약간과 단출한 씹을 거리를 나눠먹는다. 말은 대부분 안 통하지만 좋은 표정으로 서로 수고하고 있다고 격려한다. 섬마을 특유의 거침 때문인지, 새파랗게 어린 외국인근로자와 나이 들어가는 내국민어부의 거리감은 종종 그리 부드럽지 않은 농담조의 말들로 드러난다. 하지만 분위기가 깨지진 않는다. 그 농담이 그리 무례한 편도 아니고, 말도 안 통하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요즘엔 인력중개업자들도 매우 선진화되어 있다. 게다가 섬마을을 찾아오는 외국인근로자도 적어, 한 명 한 명이 귀한 판국이다. 어업을 규모 있게 하려면 서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좌) 수하연을 달고 있는 모습은 일종의 컨베이어 라인과 비슷하다. (우) 정신없이 하다보니 쌓여있었던 수하연들이 다 사라졌다.


 작업이 끝날 즈음엔, 힘들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나왔으니 이장님의 다른 양식장도 점검하기로 한다. 공장과 다르게 이곳의 생산품은 기온, 조류, 바람, 종생태계와 같은, 어민 개인도, 유수의 연구기관도, 국가도, 아니, 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정확히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어민들은 이렇게 일종의 공정 상황을 중간중간 확인해야 한다. 날씨에 따라 어떤 농사는 잘되기도 어떤 농사는 망하기도 하지 않던가. 그것보다 훨씬 심한 게 바로 어업이다.     


 이번에 이장님은 ‘오만둥이’ 양식에 도전하셨다. 알고 보니, 종묘가 잘 부착되어 있으면 이장님 친구분께서 오늘의 수고비로 그 일부를 받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오늘날 어민들은 단순한 생산자라기보다는 ‘배’라는 자산을 근간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어업경영체’이다. 그러니 이건 일종의 ‘실증기술전수’라 할 수 있겠다. 과연 취도 바닷가에서 오만둥이가 잘 자랄 것인가가 오늘 작업을 이끈 어민들 간의 화두거리였던 셈이다. 참조로, 이장님은 작년에 가리비를 했다가 잘 되지 않았다.     


 “저번에 확인하니, 달려 있긴 했는데, 알이 차있을지 모르겠네. 올해 찬바람도 많이 안 불었던 것 같고, 너무 물이 끓어서...”     


 종묘가 붙어있을 양식그물을 끌어올리는 동안 이장님 아내 분께서 이장님 친구 아내 분에게 걱정스러운 말씀을 건네신다. 이번 실험에 오랫동안 취도 앞바다를 살펴왔던 한 명의 어민으로서 나름의 분석이다. 하지만 그녀의 분석에는 합리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대감, 불안감, 그리고 자연에 의지해야 하는 고단함이 한데 뒤섞여 있다. 바다 앞에 서 있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바다의 이치를 가늠해 보려는 게 구도(求道)가 아니면 무엇일까? 두렵고 떨리는 심정(敬畏)이 그 중얼거림에서 맴돈다. 그래. 신이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믿을 수 있는 건 바다에 삶을 걸어온 어민들의 말 뿐이다.         


 오만둥이가 한가득 달려있다! 이장님 친구분이 민첩하게 하나를 따 주머니칼로 까본다. 종묘의 역할을 충분히  것으로 결정 났다. 외국인근로자들은 잘 몰랐겠지만, 어쩐지 선상 위 어민들끼리는 살짝 흐뭇한 눈치다. 오만데다 달라붙는다 해서 붙여진 오만둥이라는 이름이 그 이름값을 해준 것이다.   


오만둥이 양식장을 점검하는 어민들


 빠지로 돌아왔다. 공식 일과가 끝난 외국인근로자들은 아까와는 달리 조금 더 자유롭다. 업무 중엔 휴대폰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인지, 누구는 오랫동안 전화를 하고, 누구는 누워서 SNS를 한다. 나머지는 바닥에 둘러앉아 본격적으로 먹고 마신다. 술, 음료, 과일, 오징어포 등을 나눈다. 외국인근로자 몇 명은 적극적으로 어민들과 어울린다. 웃기도 하고, 할 수 있는 한국어를 한 마디씩 해보기도 한다. 얼큰하게 취한 이장님 친구 분은 이 와중에도 외국인근로자 몇 명이 휴대폰만 보고 있던 게 마뜩잖았나 보다. 아직 일정 안 끝났어, 휴대폰 넣으라고 성질을 내려하자 아내 분들께서 아니다, 일정 끝난 거니 그러지 말라고 워워 말리신다. 친구분께선 뭐 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지, 끌끌 대시며 소주 한 잔을 더 들이켠다.      


 굴을 양식하기 위해 상부상조하는 주민들의 친분 속에서 살가운 베트남 청년들과 함께 일하고 돌아오는 배 위. 선상 위에서 처음 본 오취마을의 모습은 이곳에 내려온 지 일 년이 지난 게 무색할 정도로 새롭고 경외롭다. 일이 끝나고 두런두런 둘러앉아 즐겁게 변변치 않은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던 식사자리, 교회가 여기였다. 때론 위태위태하고 전혀 이상적이지 않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일하고 밥을 먹는.


(좌) 작업을 마친 후 둘러앉은 식사 자리, 단출하지만 풍족했다. (우) 선상에서 본 오취마을은 새롭고 경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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