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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Oct 15. 2024

굴을 걸러 바다로 나가다.

 공휴일이었다. 하지만 뱃일엔 일하는 날, 쉬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자연이 허락해 줄 때가 일해야 할 때다. 배를 띄우려면 날씨와 바람, 바다와 파도를 곰곰이 따져야 한다. 그래서 섬마을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동네사람과 둘러앉아 물 때 달력을 짚어간다. 품앗이도 일반적이라 규모 있는 작업을 하기 위해 이웃과 함께 일정을 조율하기도 한다. 요새는 워낙 기술이 발달해 많이 수월해진 면이 있지만, 어쨌든 굴 양식업은 노동집약적인 일이라 손 하나하나가 큰 도움이다. 이장님을 돕기 위해 나도 출근했다.     


 오전 열한 시, 이장님 빠지에 도착했다. 오늘 할 작업은 ‘수하연’을 매다는 것이다. 오취마을의 굴양식은 ‘연승수하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방식은 이렇다. 수심 6m가 넘는 바다에 부표들을 띄우고 바닥부터 연결된 ‘모릿줄’이라 하는 굵은 동아줄을 두 줄 걸어놓는다. 그럼 그 줄이 해수면에서 하늘하늘 떠다니는데, 그 줄에 일정간격으로 약 2m 길이의 또 다른 줄들을 달아 늘어뜨린다. 바로 이 줄이 수하연이다. 수하연에는 굴 종묘가 부착된 가리비 패각이 20cm 간격으로 달려있고, 바로 이 패각, ‘채묘기’에서 굴들이 양식된다.      


 이장님의 아내 분께서 맞이해 주셨다. 음료, 간식거리 따위준비하러 먼저 나오신 모양이다. 이장님은 벌교에서 포터로 수하연 다발을 실어 오중이시다. 오늘 작업은 다른 마을에서 김 양식업을 하시는 이장님 친구 부부가 도와주신다고 하신다. 몇 달 고용한 외국인근로자들도 함께 온다니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이장님께선 생전 뱃일을 접하지 못한 나에게 일머리를 바라진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배에 타서 멀뚱멀뚱 사진만 찍을 순 없는 노릇.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이장님 아내 분께 수하연 묶는 법부터 배우기로 했다.     


 빠지 한구석에 놓여 있는 철제 구조물에 짧은 노끈을 묶었다 풀었다 했다. 한두 번 고리를 짓는 간단한 매듭이었는데도 생각보다 너무 기억이 안 나 진땀 뺐다. 순서를 외우기보단 몸에 익숙한 방식을 찾아 반복하니 깨달음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연습이 끝날 즈음 이장님 친구 부부가 도착했다. 외국인근로자 여섯 명도 함께 왔는데, 왐마, 빠지에 도착하자마자 우르르 누워 발 쭉 뻗고 한숨 늘어지게 자는 게 아닌가. 수하연 묶는 법은 아냐는 물음에 반쯤 누운 채로 심드렁하니 여러 매듭을 보여주더니만 두 번 만에 오케이, 이장님 아내분의 승낙을 손쉽게 받아낸다. 한눈에 봐도 뱃일에 잔뼈가 굵어 보인다.         


곧 닥칠 힘든 뱃일을 대비하기 위해 몸을 정지시킨 근로자들의 침묵이 파도소리 위에 덧입혀진다.


 작업복 차림에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일렬로 누워 있는 그들의 머리 위로 파란 바다와 하늘이 넘실거린다. 수하연에 부착된 굴이 죽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빠지 위에 설치된 그늘막 안은 무척 시원하다. 곧 닥칠 힘든 뱃일을 대비하려는 것처럼, 몸을 정지시킨 근로자들의 침묵이 파도소리 위에 덧입혀진다. 적막은 결코 아니다. 물이 흔들리는 소리가 일정하다. 이장님 아내 분과 이장님 친구의 아내 분께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시고, 바람소리와 이따금 갈매기 소리가 들려온다.     


 이장님의 포터가 도착하자마자 일은 시작된다. 일사불란하다. 외국인근로자 일부는 짐을 들고 빠지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에 올라타고, 또 다른 일부는 포터에 실려 있는 수하연 다발을 배로 옮긴다. 이장님이 크레인을 조종하고, 이장님 친구 부부와 외국인근로자들은 포터에서, 배 위에서 수하연 다발을 크레인에 걸고 끄른다. ‘옆으로, 아니 조금만 더 아래로!’처럼 크레인조종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방향지시를 크게 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가리비패각들이 이물 갑판에 한가득 쌓였고, 곧장 배는 모릿줄이 둥둥 떠다니는 마을어장으로 출항한다.


 굴양식의 규모는 흔히 ‘줄’로 표현된다. 모릿줄의 개수다. 마을어장엔 수많은 모릿줄이 평행선을 그리며 나란히 떠있는데, 오취마을 어민들은 총회를 거쳐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수준의 모릿줄을 부여받게 된다. 이장님 친구 분처럼 외국인근로자까지 고용하면서까지 굴양식을 크게 하는 주민들은 삼사십 줄을 경영한다고 한다. 하지만 오취마을의 어민 대부분은 가내수공업 비슷하게 굴 양식업을 꾸려 나간다. 나이가 지긋한 부부와 인근에 살고 있는 친척들 몇 명, 그리고 여력이 되면 이웃 몇 명과 함께, 많이는 네 줄, 보통은 한두 줄 정도를 경영한다. 이장님 네도 두 줄이다. 이 정도 인원이면 한나절도 안 돼 끝날 규모라 하니, 속으로 각오를 다져본다.


 배의 양측엔 쇠로 만든 ㄴ자 모양의 걸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 줄 설치되어 있다. 바로 이곳에 마찬가지로 두 줄인 모릿줄이 걸린다. 뱃머리에 있는 사람이 부표를 잡아 올리면 걸대 뒤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선 나머지 사람들이 모릿줄을 들어 올려 걸고, 아까 익힌 매듭 법을 사용해 수하연을 묶는다. 수하연이 다 묶이면 모릿줄을 다시 바다에 던져 넣고 모릿줄을 가이드 로프 삼아 배를 전진시킨다. 수하연이 달려 있지 않은 부분이 나오면 다시 모릿줄을 걸어 올려 수하연을 묶는, 이 과정 반복되는 것이다.


(좌) 모릿줄에 수하연이 걸려 있는 모습, (우) 갑판에 쌓여 있는 수하연 다발들, 나는 이걸 풀어서 근로자에게 전달해야 했다.


 매듭을 열심히 연습했건만, 정작 주어진 일은 좀 더 쉬운 작업이다. 갑판 위에 쌓여 있는 수하연 다발을 풀어, 수하연을 묶는 근로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일의 속도를 결정하는 만큼 막중하다. 마치 엔진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엔진은 시동 중엔 여유로울 수 없는 법. 작업은 정신없이 진행됐고, 동료들 사이엔 잡담보다는 신호가 오간다. 반장 격의 근로자가 어느 정도 한국어를 할 수 있었지만, 현장에서 생기는 급박한 상황 대부분에선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소통이 잘 안 된다. 하지만 다행히 ‘빨리’, ‘안 돼’는 통한다. 아직도 ‘빨리’라니, 한국에 대한 오래된 편견이 여전히 남아 있고나 싶었다.        


 협동(協同) 하니 언어적인 장벽은 부지불식간 사라진다. ‘들어 올려’, ‘풀어’ 따위의 외침들은 비록 언어가 달라 무슨 말 인진 모르겠지만, 오늘 우리 함께 잘해보자는 의미로 통한다. 심리적인 장벽도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나중에 ‘막둥이’라는 별명이 붙게 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구는 슬슬 나에게 말을 걸고 싶은 눈치다. 베트남어로 무어라 하는데 뭔 말인지 몰라 그냥 한껏 긍정적인 어조로 오케이! 화답했다. 그러자 밝게 웃는다. 거의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뿐이 오갔지만 그 와중에 아미고(amigo)라는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 배를 탄 동료들, 그리고 사장님과 함께 사진을 찍어 달라 손짓으로 쾌활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형뻘, 삼촌뻘 되는 동료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고된 타향살이임은 분명한데, 그들이 그들만의 빛나는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날, 역전의 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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