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취마을엔 초등학생이 한 명 산다. 올해 5학년이 된 여학생으로, 아버님에게 예쁜 얼굴을 물려받았다. 유일한 아이라 이미 동네 어르신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 많을 상이다. 또래들이 곧잘 그러는 것처럼 아이돌 춤 잘 추고, 틱톡 하고, 친구들과 노는 거 좋아하고. 만화도 좋아하는 것 같아 내적친밀감에 넌지시 물어봤는데, 모르는 척 정색하는걸 보아 심증이 더 강해진 적도 있다. 그런 반응, 내가 잘 알지.
지금은 가정적인 이유로 인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산다. 경기도 인근에 살았다가, 가업을 잇고자 하는 아버지를 따라 내려왔다. 이렇게 저렇게 전학을 많이 해왔던 까닭에 티 없이 맑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면 소재지 초등학교에서 또래답게 잘 지내고 있다. 같은 학년이 열 명 정도 되는 학교이기에, 학부모끼리도 친하고, 그 자녀들끼리도 친한, 그런 건강한 커뮤니티가 아이를 양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인싸’가 아닌가 싶다. 남자아이들한테도 약간 범접할 수 없는 인기가 있는 것 같고. 참 맞다. 이번에 전교 부학생회장이 됐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왔다가 이 아이와 재미있게 놀다 연락처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작년 겨울, 대학생 봉사자들이 왔을 때, 학부모회와 함께 친구들을 동네로 초대해 모루인형을 만들었었다. 워낙 인터넷이 잘되어 있는 오늘날이다 보니 시골 아이들도 온라인상의 유행을 빨리 따라가는데 정작 현실은 그런 걸 채워줄 수 없었던 것이다.
포두초등학교 아이들과 한국해비타트 CCYP 동아리 대학생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에게 사업 취지도 설명하고, 참석도 독려하고, 혹시 하고 싶은 건 뭔지, 싫은 건 뭔지 따위를 물어봐야 되는데, 카톡이나 문자로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의 말처럼 교회의 초등부 교사가 가질 법한 어려움이었달까. 그래서 작은 마을이니 만나서 얘기하는 게 더 쉽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정말 바쁘다. 나도 아침 여덟 시까지 출근해서 다섯 시에 퇴근을 하는데, 이 친구는 더 일찍 마을을 떠나 더 늦게 마을에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몇 차례나 등하교 시간에 맞춰 집으로 방문해 봤다. 갈 때마다 비어있어 주변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에게 수소문해 보니, 그 시간엔 온 가족이 굴막에 있다고 하신다. 굴막. 오취마을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가건물의 한 유형이다. 굴 패각이 쌓여있는 가로수 길을 타고 섬의 해안선을 따라 왼쪽으로 꺾어 돌면, 수산업체 간판을 달고 있는 굴막들이 바닷가에 접해 마을에 다다르기 전까지 도열해 있다. 주민들이 가계로 물려받으며 운영하고 있는 오취마을의 심장이다.
모양새는 언뜻 보면 대형비닐하우스처럼 생겼지만, 방풍도, 방한도 훨씬 우수한 갑바천 몇 겹이 비닐을 대신하고 있다. 강한 일조량에 내부가 너무 더워지지 않게 검은 차양비닐까지 쳐놨다. 골격도 훨씬 튼튼하게 보강됐다. 각관이 수직, 수평, 대각선으로 견고하게 짜여 있고 사람이 드나는 미서기문도 묵직하다. 특이한 건 굴막의 한쪽 면에 거대한 쌍미닫이문이 달려 있거나, 그냥 탁 트여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개구부는 바로 바다에 접한다. 방풍, 방한, 방열을 이렇게 신경 쓰고도 왜 이런 구조를 가지나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덩이굴들을 풀어놓기 위해 배가 접안해야 할 공간이 필요하니까.
그러다 보니 굴막에 들어서면 육지에서 바다로 넘어가는 일종의 전이공간처럼 느껴진다. 동굴 같기도 하다. 차양비닐 너머에서 갑바천을 물들이는 낮은 조도의 햇빛을 간접조명 삼아, 굴막을 가로질러 맞은편에서 쏟아지는 빛 속으로 빠져나가면 불현듯 바다가 펼쳐지는 것이다. 굴막 안은 복잡하다. 한쪽엔 수도시설이 있고, 패각류를 크기별로 분류하는 롤러컨베이어 비슷한 설비도 보인다. 낯선 어구들도 여럿 쌓여있다. 여러 가지 설비들이 빼곡히 차 있기 때문에, 강한 광원이 있어도 깊은 그림자가 굴막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굴막은 육지에서 바다로 넘어가는 일종의 전이공간이다.
건물은 재현(representation)한다. 건물은 과거의 건물을 모사한다. 매우 과거로 돌아가자면, 건물은 나무줄기에 기대어 잔가지, 이파리 따위 등을 얼기설기 엮어 하늘을 가린 구조물을 흉내 낸다. 건물이 지붕, 보, 기둥으로 구성되는 이유이다. 동시대의 다른 건물도 모사한다. 잘 팔리는 건물은 유행처럼 번져나가곤 한다. 하지만 건물은 본질적으로 세상 속에 놓여 있는 사람의 사유와 연장(extension)을 재현한다. 그리스의 신전은 판테온을, 성당의 홀은 천상을 모사하고, 동굴에서 빠져나온 인류가 집을 세운 건, 사람이 하늘 아래에서, 그리고 땅 위에 ‘서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굴막은 땅과 바다를 오가는 사람의 일생을 재현한다. 어민들에게 바다는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밝기도 하면서 어둡기도 한 굴막에서, 땅인지 바다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이 공간에서 어민들은 바다에 대한 도전을 준비한다. 그런 그들의 일상은 빼곡히 쌓여있는 어구들과 투박한 갑바천을 걸고 있는 각관구조처럼 겉치레 따위 없이 담백하다. 그게 다가 아니다. 어느 때 굴막은 텅텅 비어 쓸쓸한 창고에 지나지 않지만, 어느 때는 여럿이 함께 굴을 까는 곳이 된다. 굴막처럼 마을사람들의 삶도 비워짐과 채워짐이 반복되고, 그러면서 공동체는 점점 끈끈해져 간다.
게다가 이곳은 일을 하는 곳인지 살아가는 곳인지도 모호하다. 굴을 운반하고, 분류하고, 세척하고, 까고, 포장하는 일련의 설비들이 있으면서도, 어민들이 식사하고, 수다를 떨고, 늘어져 쉬고, 함께 마시고 놀 수 있는 시설들이 완비되어 있다. 싱크대,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냉장고, 전기밥솥은 물론, 여섯 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소파, 식탁, 그리고 장작으로 때는 난로까지. 주민들과 고된 일을 끝내고 굴막으로 함께 와 먹었던 남도식 집밥과 아이스믹스커피는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박신 작업이 한창인 굴막의 풍경, 마을과 주민들의 일생이 굴막에 녹아 있다.
일곱 시 십오 분, 한겨울 아침에 아이가 있다는 굴막 앞에 섰다. 이른 시간,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 여섯 시에 출발하는 읍내버스 첫차를 탔다. 입김이 나오는 쌀쌀한 공기, 아직은 어둑어둑한 하늘, 그리고 굴막에서 새어 나오는 형광등의 하얀빛. 며칠 전에 아이의 아버님이 사무실로 찾아오셔서 오랫동안 대화할 수 있었다. 어업에 바빠 양육을 하는데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씀, 새벽부터 온 가족이 굴 작업을 해야 해서, 아이도 함께 굴막에 나가 한 시간 넘게 스쿨버스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 등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살짝 무거운 마음을 안고 미닫이문을 힘주어 열었다.
기우였다. 아이의 할아버지는 굴막 한편에서 수레로 굴을 쌓고 계셨고, 아버지는 호스를 들고 굴을 씻고 계셨다. 이미 아이와의 행사에 대해 보호자들께 몇 차례나 전화로, 방문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한 바 있었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셨다. 아이의 할머니도 나를 마치 가정방문을 온 선생님처럼 맞이해 주셨다. 식탁에 앉아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아이도 나를 보고 살짝 놀란 기색. 나는 그 표정이 무척 좋았다.
그때 느낀 굴막은 단순히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 고단한 생계가 펼쳐지는, 그런 단순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칙, 칙, 칙, 전기밥솥에서 간헐적으로 수증기가 빠지며 아침밥이 준비되는 소리가 들렸고, 따뜻하다곤 할 수 없었지만 춥지 않을 정도의 온기가 이마와 뺨을 감쌌다. 분명 아이를 향한 조손세대의 애정이 가득 차 있는 곳, 다시 돌아온 가족의 어려움을 보듬으며 서로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삼십여 분 정도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