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을 기르는 오취마을 어민들에게도 중요한 명절이 있다. 무엇일까? 세시풍속들이 농경과 연관되어 있는 바, 정월대보름, 추석 등이 대표적일 텐데 뱃일도 비슷할까? 그렇다. 굴 양식업이 바로 연상되진 않을 테지만 똑같다. 정월대보름이야 파종하기 전, 한 해의 풍작을, 한가위는 수확하기 전, 곧 있을 풍작을 기원한다고 하는데, 굴양식업과는 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어민들은 추석을 기점으로 한 해 굴양식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상하고, 설날 전후로 채취를 끝낸다. 정월대보름에는 ‘풍어제’를 지낸다. 얼추 벼농사와는 정반대라 할 수 있겠다.
굴 종묘는 수하되기 전에 ‘단련’의 시간을 보낸다. 굴 종묘는 썰물 때 바닥이 드러나는 뻘에서 물의 잠겨 있는 시간과 공기에 노출된 시간을 번갈아 경험하며 환경에 대한 내성을 키우게 되는데, 이때 수온이 어느 정도 높아줘야 활발히 생장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하가 된 이후엔 반대로 수온이 많이 내려가줘야 하는데, 그 시점이 바로 추석 전후다. 취도 앞바다에서 이런 단련 작업이 일어나진 않는다. 대개 통영이나 벌교에서 단련된 참굴 종묘를 가지고 와 오취 마을어장에다 거는 식이다. 고흥굴이라고 하지만, 사실 고흥에서 태어난 굴은 아닌 셈이다.
취도 일대의 면허 어장 현황판
면허어장에 대한 어업권은 법적으로 개인이 아니라 어촌계에 부여되어 있다. ‘소유’가 아니라 ‘총유(總有)’다. 어촌계장은 마을어장에 대한 어업행사권을 계약서로 승계하고, 계원들의 역량에 따라 마을어장의 양식 줄을 분배하는데, 계원들은 할당된 줄만큼의 임대료를 어촌계에 지불한다. 역량은 보통 가용가능한 배의 크기,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인력 수에 영향을 받는다. 사실 굴 양식의 규모는 굴 패각을 까는 인력 규모와 진배없다. 굴을 아무리 많이 건져 와도 그걸 까지 못하면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을엔 어민들이 운영하는 수산업체가 열댓 개 있다. 그중 수확 시기에 서른여 명의 인력을 유지할 정도로 규모 있는 수산업체가 두 개, 고만고만한 나머지가 열 개 남짓 있다. 물론 십여 명 정도를 고용하는 업체도 여럿 있지만,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통통배 하나를 몰며, 친지 한두 명과 함께 굴막을 꾸려가는 게 일반적이다. ‘총유’라는 권리행사에서 기인하는 주목해 볼 만한 사실도 있다. 규모가 다른 경영체들이 한 곳에 모여 있지만 그 관계는 결코 ‘무한경쟁’의 시장논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공동체적’이다.
섬마을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어민들은 서로 친인척 관계로 엮여 있고, 어업은 가족경영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그러다 보니 덩치가 큰 수산업체는 어촌계의 일원으로서 규모에 따른 역할을 지게 된다. 마을사람들을 많이 고용하고, 보유하고 있는 큰 배로 마을어장을 관리하고, 채묘기를 대규모로 동네에 유통시키는 것 등 따위다. 마을을 대표하여 고흥군 내 굴양식업자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고흥군이나 통영에 소재한 굴수하식수협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다.
마을양식장에서 굴을 채취하고 있는 오취마을 어민
11월 중순부터 굴을 ‘채취’하기 시작한다. 수하연이 팔월에 걸리니, 굴은 얼추 네 달 동안 취도 바닷가에서 성장한다. 고흥군에서 가장 맛있는 굴을 생산하는 곳이라 알려졌음에도 생산량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오취마을에서 생산되는 굴의 총량이 통영의 기업 하나의 생산량보다 더 적다고 한다. 수산업체 열댓 개가 모여 있다 하더라도 길드식의 가내수공업 방식으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기업을 따라갈 순 없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에게 굴이라 하면, 통영굴이 가장 먼저 떠오를 테다.
하지만 오취마을에선 그만큼이나 차별화된 굴이 생산되며, 이에 대한 주민들의 프라이드는 대단히 높다. 모래뻘에서 대량생산되는 통영 굴에 비해, 어촌마을이 성심성의껏 관리하는 갯벌에서 수작업으로, 그것도 소량 생산되는 굴은 그 영양과 질감의 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리적 표시제를 획득한 지는 말할 것도 없이 오래전이다. 보통 이 년씩 양식되는 개체굴과 달리, 네 달 만에 수확되는 굴답게 ‘오취굴(Ochwi Oysters)’은 알이 잘고 탱글탱글한 탄력을 가진다. 그러다 보니 다른 굴에 대해 생식, 김장, 젓갈에서 비교우위를, 취도 바닷가라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헤리티지’를 가지게 된다. 비록 통영에서 태어났지만 고흥굴이 고흥굴이라는 명칭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이유다.
오취마을에서 막 깐 굴, 다른 굴과 달리 달큰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
이 시기 작업을 ‘박신’이라고 한다. 굴 껍데기를 깐다는 의미이다. 이 시기가 되면 마을은 정말 산업현장으로 변모한다. 연세가 일흔이 넘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뺀, 거의 모든 주민들이 굴막에 상주하니, 한낮의 동네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매일 박신 작업이 반복되는데, 깐 굴을 배송하기 위해 택배차가 들어오는 오후 다섯 시를 기준으로 종료된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마을로 걸어 귀가하시고, 저녁밥을 올리고, 작업복을 정비하신다. 그러다 보니 해가 다 떨어져서야 마을이 깨어나는 모양새다. 그에 비해 시작 시간은 딱 정해져 있지 않다. 박신 작업에 대한 수당은 근로시간에 맞춰 책정할 수 하지만, 깐 굴의 킬로수만큼 받아갈 수도 있다. 당연히 한평생 굴을 까와, 말하자면 재야고수인 어르신들에게 시간에 맞춰 수당을 받을 유인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여력만 되면 새벽부터 굴막에 나가시는 거다.
수산업자들도 어떤 시점에는 반강제적으로 불철주야 굴막을 돌려야 한다. 오취굴은 매일 채취되고, 즉각 판매된다. 11월 말부터 시작되는 김장철 수요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전체 생산량의 9할은 김장재료의 성지, 가락시장에 도매가로, 1할은 직거래 택배로 배송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굴 도매가가 12월에 최고조를 찍고, 설날로 다가갈수록 떨어진다는 점이다. 23년 기준으로 낙폭이 킬로 당 사만 원 대에서 만 원 대까지로 꽤 크다. 그래도 서너 달은 갈 굴 수확철, 박신 작업의 인력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11월, 12월엔 무리를 해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꼼짝없이 규모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조새를 들고 굴을 까고 계신 여성 어르신
박신 작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중노동이다. 한 겨울, 굴막에 있는 난로의 열기에 기대어, 찬 바닷물에 흠뻑 적셔진 굴들을 ‘조새’라는 도구로 까야한다. 하루 종일 목욕탕의자처럼 낮은 의자에 쪼그려 앉아 반복노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웃끼리 이야기도 나누고, 적당히 쉬어가기도 하면서, 이렇게 힘겹고 지루한 일을 넘길 수 있을 만한 ‘구력’과 ‘노련함’ 또한 있다. 주로 여성어르신들이 굴을 까는 동안, 남성은 겨울바람을 뚫고 굴을 가져와, 세척하고, 분류한다. 굴막의 설비를 관리하는 것도 남성의 몫이다. 굴을 함께 까는 남성 어르신도 많지만, 많은 분들은 의자에 앉아 근로자들의 작업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음 출항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