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신나는 날이라니. 방금 나와 생각이 통한 어르신의 입에서 예상 밖의 귀여운 단어가 나왔다. 나는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열한 시가 안 되어 비는 그쳤고, 나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오취마을 앞바다로 나갔다. 아직은 해가 뜨지 않은, 안개가 자욱한 바닷가 위로 살색과 주황색이 섞인 듯한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깨끗한 습기를 품은 바람 냄새가 기분을 마저 환기시키기도 전에, 비를 피해 침묵을 지키던 수많은 소리들이 막 깨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소리가 쏟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소리는 퐁당퐁당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소리였다. 우천으로 인해 배가 아직 출항하지 않았기에, 그래서 배의 엔진소리, 배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바닷속에 아직 반향 되지 않았기에, 수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따라 물고기들이 잔뜩 해수면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오 초 간격으로 물 튀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의 은빛 섬광이 연달아 다섯 번의 포물선을 그리는 광경도 눈에 붙들렸다. 빗줄기가 약해지자마자 어민들이 배에 시동을 거신다. 어떻게 이렇게 바로 바다로 나가실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비가 그치길 기다리셨던 거다. 그렇게 배의 시동소리가 한바탕 바다를 휘저으면, 오취마을 앞바다는 이내 잠잠해진다.
오취마을 앞바다는 호수 같이 잔잔하다.
오취마을 앞바다는 많은 이들에게 비슷한 심상(心想)을 떠오르게 한다. '바다 같이 넓은 호수'라는 흔한 비유가 간단히 뒤집히기 때문이다. 호수 같이 잔잔한 바다. 내가 가졌던 오취마을 바닷가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왜 그런지는 지도를 열어보면 단박에 이해된다. 오취마을은 해창만에 있다.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만’이다. 지금은 간척되었지만 한 때는 길두리, 장수리, 호형리를 거쳐 고흥읍까지 배가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깊은 골이 하나 있었고, 만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향하며 수심이 낮아졌다. 그러니 넓은 뻘이 생겼고, 치어들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 회유가 일어났고, 어업이 자연히 성행했다.
먼 바닷가에서부터 큰 파도가 생기더라도 취도까지 들이닥치기엔 장애물이 많다. 와도, 첨도, 비사도, 옥태도 등이 방파제 역할을 해준다. 거기에다 마을에서도 과거 위판장 인근 해안가에 방파제를 세웠다. 그 덕분에 방파제 뒤쪽으론 거의 파도가 없다. 이따금씩 배들이 오가며 밀어내는 잔물결만 있을 뿐이다. 방파제 앞뒤로 작은 선착장과 고압분사식 세척설비가 조성되어 있다. 크레인도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부장교, 빠지 등이 잔잔히 떠 있다. 배들은 여기에다 닻줄을 걸고 정박한다.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평상도 해안선을 따라 띄엄띄엄 놓여 있는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이곳에 앉아 한 땀 한 땀 주낙을 정비하시곤 한다.
선착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민과 배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한 번 보자. 조업이 한가한 날이다. 어민 한두 명이 롤러와 페인트 통을 들고 나온다. 이곳의 일부는 썰물이 되면 바닥을 드러내고, 그 바닥엔 배를 받쳐주는 구조물이 있는데, 이 위에 배를 띄워놓으면, 물이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그 구조물에 안착하게 된다. 배는 구조물에 의해 공중에 살짝 떠있고, 어민들은 그 덕분에 배 밑바닥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어민들은 고압으로 선체에다 물을 쏴 바닷물과 각종 부착물들을 씻어 내린다. 어느 정도 말린 후, 현측을 따라 물에 잠기는 레벨을 마스킹테이프로 표시하고, 잠기는 부분을 페인트로 붉게 칠한다. 각종 어패류, 해조류 따위가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페인트다. 성인 남성 둘이 배를 오른쪽, 왼쪽으로 넘기면서 두세 시간 정도 고군분투한다.
배에 페인트칠을 하는 어민들
한 번은 마땅한 주인을 찾지 못해 어민들 사이 떠돌던 낡은 바지선을 마을어민이 인수한 적 있다. 어업의 현역이기도 한, 비교적 젊은 마을임원 분들께서 힘을 합쳐 그 바지선을 수선한다. 스러져가는 데크를 뜯어내고 목재들을 새로 재단해 바지선 골격에 못 박는 일이다. 임원 분들이 딱딱 망치질 두세 번 하시면 못머리까지 게 눈 감추듯 사라져 버리는데, 웬 걸, 나는 십수 번을 때려도 안된다. 그리 무거운 망치도 아니었는데 나중엔 팔이 후들후들 떨려서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께서도 잠깐씩 들러 일이 잘되느냐고 괜히 안부를 건네신다. 마을사람들이 세 배는 많았을, 당신께서 현역이었을 옛날이 기억나서가 아니었을까.
바지선을 고치는 오취마을 임원진들
또 어느 날은 파란색과 하얀색을 퍼스널컬러로 가진, 제법 멋들어진 탱크로리 유조차 한 대가 선착장에 서 있다. 탱크에 대문짝만 한 글씨로 ‘수협면세유류’라고 적혀있다. 자세히 보니 고흥군수산협동조합에 대한 기업명, 주소, 전화번호, FAX번호도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어민들은 수협으로부터 면세유를 제공받을 수 있다. 작은 배를 몰며 가볍게 찌낚시를 하고 싶은 이들이 어업 허가를 받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탱크로리는 바로바로 정량만큼 주유를 해야 해서 제법 잘 갖춰진 구조를 보여준다. 배들이 한 대, 두 대, 순서를 지켜 정박하면 젊은 탱크로리 운전사가 호스를 꺼내 주유구에 꽂는다. 여기서 토막상식, 배는 밥을 빨대로 빨아먹는다. 물론 기름통을 따로 가져와 채워 넣을 수도 있다.
배가 주유되고 있는 광경
오취마을의 어업은 주로 연안어업이다. 배를 타고 나가 하루 만에 어획을 마치고 돌아오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오취마을엔 큰 배가 많이 없다. 대부분이 통통거리며 수면을 가로지르는 ‘통통배’다. 고만고만하니 얼핏 보면 다들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나름 개성들이 있다. 어민들은 잡고자 하는 어종에 따라 배를 ‘커스터마이징’ 하기 때문이다. 대충 여수에서 이물에다 크레인을 설치하고, 녹동에서 고물에다 롤러를 설치하고 뭐 이런 식이다. 경험으로 조류를 읽어 그물을 던지시던 어떤 어르신은 배에다 소나를 다시 설치하셨다. 당신께선 사뭇 심각한 어조로 이 나이를 먹고 아직도 배에 돈 쓰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하셨지만, 이제 눈으로도 고기 떼를 확인할 수 있다며 설레는 마음을 제대로 숨기지는 못하셨다.
배가 커지면 설비를 더 다양하게 조립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취도를 벗어나면 각양각색의 배들을 보게 된다. 크레인을 서너 개씩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배, 덤프트럭의 적재함처럼 생긴 배 등등. 어종, 어구, 어법에 맞춰 유기체마냥 진화하고 분화되는 것이다. 종종 인근에서 쌍끌이선이 피항을 해오기도 하는데, 오취마을의 배보다 덩치가 두세 배는 더 크다. 그때마다 통통배가 새삼스레 귀여워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정말 통통배와 통통배를 타는 어민들이 더 좋다. 그물망으로 바닥까지 헤집으면서 고기를 몰아 잡는 대신 낚싯줄, 통발을 한두 줄 늘여 고기를 기다리는 길을 선택한 이들이 훨씬 존경스럽다. 섬마을의 공동체가 서로,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 ‘생산’하며 다듬어온 길이기 때문이다.
“이장이 알립니다. 00시경 삼치 배가 우리 마을에 들어오니까 삼치를 구입하려고 하시는 주민 분은 선착장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00시경 삼치 배가...”
이장님의 방송이 마을에 울렸다. 사무실에도 들려 우리 보고 시간 맞춰 나와 보라 일러주셨다. 선착장으로 나가보니 왁자지껄하다. 삼치잡이를 마친 쌍끌이선이 정박해 있고, 주민 분들이 모여 계신다. 평소라면 나로도 입판장에 보낼 삼치들이었지만, 오늘은 정기휴일이다 보니 배가 소비자에게 직접 찾아왔다. 선장이 이장님, 그리고 마을 어민 몇 명과 친분이 있는 걸 보아 이장님의 입김이 있었나 보다. 이장님이 돈을 걷고 손수 삼치를 무게 달아 주민들에게 드린다.
서울에서 유통망 구조를 거쳐 상품을 구매해 왔던 나로선 현장에서 일어나는 생산자와 소비자들 간의 소매 거래는 약간 충격적이었다. 나는 이때 처음, 생물 삼치를 봤는데 크기가 거의 팔꿈치 길이인 점도 그랬고, 여성 어르신들이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지폐를 내시는데, 무슨, 통으로 한 마리가 들어오는 것도 그랬다. 이거 도시에서 회 쳐 먹으려면 십만 원이 뭐야, 더 들 것 같은데 엄청나게 저렴하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삼치 직거래 현장이라 할 수 있겠다.
남노인당에서도 나오셨다. 이때 한 마리 싸게 사놓으면, 노인회에서 다 같이 하루 이틀 먹을 술안주거리로 딱이다. 다만 저기 인파 뒤 쪽에서 그냥 달라고 하신다. 관행적인 일이다. 예전에 바지락을 긁어 왔을 때 여성경로당에서도 가만히 보고 계시다 볼 일이 끝날 때 즈음 한 묶음 얻어 가시는 걸 본 적 있다. 어민은 영 안 내킨다는 표정으로 턱 한 묶음을 내놓으셨다. 하지만 이번엔 안 되는가 보다. 이장님이 외치고, 주민들이 서로에게 전달한다.
“이번엔 갈매기 안 돼! 안된대!”
갈매기라 일컫는 모양이다. 너무나 그럴 법 한데 또 너무나 의외인 단어에 잠깐 코가 시큰했다. 인상적으로 정겨운 용법이었다. 그 말에 노인당의 어르신들은 허허 웃으며 아쉽다는 표정이셨지만, 결국 판매가 끝날 즈음엔 이장님의 수완으로 기어코 세 마리 얻어가셨다. 끝이 아니다. 이장님께서 신난 표정으로 사진을 열심히 찍어대던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한 마리 안겨주셨다. 나도 갈매기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