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오취마을은 야단법석이다.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다.
봄에 찾아든 제비들이 열심히 앵벌이를 하더니, 슬슬 어엿한 일가를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녀들도 대성해서 둥지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아침밥을 달라 재잘재잘 독촉하면 부모는 열심히 벌레를 잡아온다. 인간, 동물 가릴 거 없이 등골이 휘는 건 부모의 숙명이다.
물수제비라는 단어가 있다. 어렸을 때, 강에서 친구들과 몇 번 떠본 걸로 기억한다. 잘하진 못했다. 서너 번 정도만 튀어도 환호했다. 납작한 돌이 여러 차례 날렵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었다. 제비의 비행도 그렇다. 조금만 다가가도 도망가는 새들과 달리 제비는 거리낌 없이 날아들어 온다. 문을 열어놓으면 사무실 안까지 들어올 지경이다. 그래서 왠지 더 귀엽고 친숙하다.
작년에도, 올해도, 사무실 서까래 아래에 제비들이 둥지를 틀었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사방이 막힌 자투리공간으로 제비가 날아들어 가기에 따라 가보니 제비 세 마리가 둥지에서 똘망 똘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뭐 그러고 있는 상황이다. 빈 둥지는 십여 개가 넘는 것 같고, 새끼들이 꼬물거리는 둥지는 한 다섯 개 정도. 땅딸막하고 토실토실한 게 너무 귀여워 일하다 스트레스 받을라치면 둥지로 냉큼 쫒아가 마음의 안정을 취해본다.
어느 날, 주민어르신들에게 쿠사리를 먹었다. 우린 마을회관을 빌려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제비 똥을 치우라는 엄명이 떨어진 것이다. 그제야 고개가 밑으로 떨어졌다. 둥지에서 바닥으로. ‘힐링스팟’이 ‘똥 공장’으로 격하되는 순간이다. 둥지에서 엉덩이만 쏙 빼놓은 채 하루하루 조금씩 싸놓는데, 아이들이 장성하니, 어느새 감당이 안 되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래. 내가 사람 똥은 안 치워줘도 니네 똥이야 못 치우겠냐.’
바가지에 물을 한가득 퍼와 바닥에 뿌리고 바닥솔로 박박 밀었다. 한 번, 두 번, 물청소를 하다 뜨거운 햇살에 머리가 띵해질 즈음, 나이든 어르신들이 왜 제비 둥지를 털어버리는지 이해가 됐다. 마을에서 가장 친절한 집에 제비둥지가 가장 먼저 생긴다는데, 친절함이라는 단어의 심층을 보게 됐달까.
요주의 대상은 처마 밑에 쏙 들어간 두 군데다. 이유는 간단하다. 폭우가 와도 바닥에 떨어진 똥들을 안 쓸어간다. 그 중 하나엔 새끼 네 마리, 다른 하나엔 새끼 세 마리가 살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둥지마다 부모새가 두 마리 있고, 이 녀석들은 정말 열심히 벌레를 물어 나른다. 부모새가 다가오면 새끼들은 있는 힘껏 조동이를 벌려 지저귄다. 얼마전만해도 둥지 밖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새들이었는데, 부모의 노고에 무럭무럭 자라 이젠 둥지가 작아 보일 지경이다.
엉덩이도 못 돌리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 즈음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사무실을 나왔는데, 새끼 네 마리 중 한 마리가 둥지 밑에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다친 게 아닐까 확인하기 위해 다소 성급하게 새끼제비를 주우려 했는데, 그때마다 새끼제비는 내 손을 피해 날아갔다. 하지만 얼마 날지 못하고 떨어지니,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그 과정을 한두 번 더 반복했다. 그러다 제비새끼가 둥지에서 너무 멀어지겠다 싶어 멈춰 섰다. 조사가 필요할 때였다.
조사 결과, 나는 매우 심각해졌다. 어미제비는 먹이를 새끼들한테 골고루 번갈아주는 게 아니었다.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벌린 새끼의 조동이 색깔을 보고 건강한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데, 그 와중에 건강하지 못한 새끼는 도태되어 둥지에서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멀리 도망갔던 새끼제비는 다시 둥지 아래에 서있었다. 이젠 이대로 둘 수 없었다. 떨어진 새끼는 길고양이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으니, 조심히 들어 둥지에 다시 넣어둬도 된다는 인터넷의 조언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즉시 창고에서 10m 사다리를 가져와 펴고, 새끼제비를 잡아 둥지에 넣으려는 순간,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당혹스런 일이 터져버렸다. 남아 있던 세 마리의 새끼제비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심지어 주워온 새끼제비도 둥지에 넣자마자 다시 날아갔다. 어미제비가 바로 돌아왔는데, 둥지가 텅 빈 걸로 보고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좋은 마음으로만 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말 그대로 한 가정을 ‘파탄’ 내버린 셈이다.
터덜터덜 돌아와, 허탈감, 죄책감, 황당함이 섞인 심정을 토로하자, 사려 깊은 연인이 제비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내줬다. 제비는 한국에 왔을 때 두 번 분가하는데, 단 번에 이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성장한 새끼들도 둥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대상지를 물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기 새끼제비가 둥지에 나와 있을 수 있으며, 어디론가 날아가도 해가 떨어지면 다시 둥지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제발 돌아와 있어라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출근했다. 여전히 둥지는 비어있었다. 살짝 울적한 마음이 드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어라, 제비새끼 두 마리가 둥지 인근 계단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좀 더 둘러보니 어미제비도 둥지 근처 처마에 앉아 있었다. 순간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자기 둥지로 돌아온 건가? 제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건 아닌 건가? 둥지에서 먹이를 받아먹어왔던 새끼들인데, 지금은 어떻게 먹고 있나? 아니, 그 전에 이 녀석들이 그 제비들은 맞을까? 그렇다면 나머지 세 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사무실을 나왔을 때, 이 의구심들은 깨끗하게 풀렸다. 둥지 근처 전선에 네 마리의 새끼제비가 모여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부모새는 전선 위에 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고 있었다. 여섯 마리 모두 확인된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날 오후 제비가족은 새로운 둥지를 찾아 영영 떠났다. 근처 처마에 있었던 세 마리 새끼를 두고 있던 또 다른 제비 일가도 같이.
정말 요새 오취마을은 야단법석이다.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