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 연락처 교환
적막한 산골에 전화벨이 울린다.
"동생 빨리 내려와라."
"귀찮게········"
전화 속 주인공은 계곡 아래에 사는 형님이다. 이 양반은 부산에서 귀농한 유일한 이웃이다. 반경 400미터 안에 집이 두 채 있는데, 또 다른 이웃인 영감님은 봄부터 가을까지만 이웃인 일종의 유목민이다. 따뜻한 햇볕을 즐기다가 월봉산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온기를 쫓아 이주를 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러니 형님은 귀하디 귀한 유일한 이웃인 셈이다.
이양반은 조선소에서 일을 하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었다. 속은 어떤지 몰라도 표정은 항상 밝다. 막걸리를 친구 삼아 불그스레한 얼굴로 늘 무언가에 열심이다. 말이 귀농이지 자연인에 가깝다.
난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니 되도록 찾아오지 마세요,라고 쌀쌀맞게 엄포를 놓은 상황이라 전화나 방문이 매우 드문데, 이렇게 찾는 것을 보면 급하거나 중요한 일인 게 분명하다. 서둘러 계곡을 내려간다.
"아우야, 귀한 것이 생겨 같이 먹자고 전화했다."
동생이 보내줬다는 장어를 구우며 반갑게 맞이한다. 가끔 집 앞에 생선 등 먹거리를 놓고 갈 때마다 입이 짧아 버리게 되니 형님이나 드세요,라고 핀잔을 줬는데, 맛난 보양식 앞에서 잠시 잊은듯하다.
"동생 많이 먹어라."
"거참, 형님도 많이 드세요."
귀한 안주를 곁들여 막걸리가 한 순배 돌자 넌지시 말을 건넨다.
"동생 우리 비상연락처 하나씩 교환하자."
"예?"
"동생이나 나나 이 산골에서 무슨 일 생기면, 서로를 거둘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무슨 업보로 마지막을 지킨단 말인가. 만일에 대비해 비상 연락처 하나쯤은 서로 알고 있어야지."
"형님 그러시지요."
친구들이여, 권하노니 홀로 귀농 귀촌을 꿈꾸지 마시라. 마나님, 영감님 또는 애인 손이라도 잡고 함께 내려오시라. 산골은 혼자서는 외롭다.
사족)
결코 불륜을 권하지 않으니 애인이란 단어는 배우자가 없는 분들만 귀 기울이시기 바란다.
몇 년 전에 쓴 글이다. 지금도 잘 지내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