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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Sep 21. 2022

불 켜진 창

아내가 잠들길 기다리며

# 불 켜진 창


아내가 잠들길 기다리는 한 사내가 있었다. 죄지은 게 많은 사내는 매일 밤 불 켜진 창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필자 선배였던 사내는 직장 내 생존을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누적된 무리수는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채로 커지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아내 몰래 가족이 가족이 살고 있던 아파트를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아 날리고 만다. 그 순간 처자식과는 타인이 되고 말았다.


결국 직장에서도 방출되는 불운을 겪고 이후 제기를 노리며 자그마한 사업장을 꾸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위기에 몰리게 된다.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사내는 매일 밤 아내가 잠들기를 기다려 집에 들어갔다. 이미 오래전부터 각자 방을 써온 까닭에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 아내 몰래 다시 집을 나섰다. 


아내는 아내대로 사내를 기다렸지만 억지로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는 않았다. 무능한 남편이 야속했지만 생존을 위한 몸부림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라는 것을 잘 알기에 남편이 스스로 다가오길 기다렸다. 사내는 그런 아내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어느 새벽 사내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어제도 불 켜진 창을 지켜보다 차에서 잠이 들었다.

불 켜진 창이 참으로 야속도 하다.

오늘도 불 켜진 창을 바라보며 담배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다.'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사내 아내로부터 소식이 왔다. 의외의 인물로부터 걸려오는 뜻밖의 전화는 대부분 죽음을 전하는 연통이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 담배를 즐기던 사내는 폐암으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입원한 사내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버거웠던 이승에서의 끈을 놓아버렸다. 사내 아내는 필자 손을 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이 인간 가면서까지 속을 썩이네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저렇게 갑자기 떠나버리면 우린 어떡해요."


가장의 어깨는 언제나 무겁다. 가장이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할 무게다. 또한 가장이라면 당연히 달아야 할 훈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년 이후까지도 감당하지 못할 짐을 짊어져서는 곤란하다. 중년 이후에 지게 되는 감당키 버거운 무게는 영원히 자신을 일으켜 세우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다면 그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설령 그 결과가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힐지라도 그 편이 낫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가족을 온전히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는 절대 삼가야 한다. 그것은 승부수가 아니고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만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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