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탈 Sep 26. 2022

김치와 독거노인

산골에서 혼자 살면 누구나 독거노인

# 김치와 독거노인


이건 아니다. 머리는 반백이고 행색은 초라하지만, 그래도 마을에서 제일 젊거늘 독거노인이라니 말도 안 된다.


성질 급한 겨울이 찾아온지도 한참이 지난 어느 해 어스름한 저녁에 아는 형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 년에 두 번도 있기 힘든 일이기에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반가움은 잠시고 이네 고민에 빠진다. 받자니 마음이 상하고 거절하자니 상대방이 멋쩍을 물건을 가져가라 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두 겨울이 오기 전 모두가 김장을 한다. 직접 담그지 않더라도 김장김치를 준비하는 것은 겨울채비의 기본이다. 산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몇몇 집은 명절에나 찾아오는 자식들이 김장을 위해 귀한 나들이를 한다. 그 탓에 명절 특수를 맞은 시장처럼 시끌벅적 활기가 넘친다. 찾아오는 자식들은 큰 효도라도 하는 냥 부모님께 얼굴을 보이고 맛난 김장김치도 얻어가니 일석이조 여행이 분명하다. 늙고 초라한 우리 어머님들도 힘은 들지만, 자식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자식들 얼굴을 볼 수 있으니 결코 손해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집이 이렇듯 김장 특수를 누리지는 못한다. 대다수는 평소와 다름없이 적막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담장 너머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자식을 향한 그리움만 커진다. 산골 독거노인 대다수는 김장철이 아픈 계절인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부녀회에서는 본인들 김장을 마치면, 면 내 독거노인들을 위해 김장김치를 담가 마을단위로 배분을 한다. 참으로 고맙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맙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필자를 독거노인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다. 아직은 영육(靈肉) 모두 청춘인데 독거노인 대열에 낄 수는 없지 않은가. 참으로 민망한 노릇이다. 하여, 형수 고맙지만 전 김치 충분하니 마을회관에서 활용하세요,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독거노인이라니········.


사족)
귀농 초기에 쓴 글이다. 


독거노인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시골에서는 혼자 살지 말아야 한다.              


이전 12화 비상 연락처 교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