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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Sep 09. 2022

외로움에 대한 처방전

누구나 외로울 수 있다.

# 외로움에 대한 처방전


나이가 들면 외롭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나, 그는 단지 그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을 뿐이다. 강한 부정이라면 오히려 절대 고독자일 가능성이 크다. 외로움은 인간에겐 숙명이기에 피할 수가 없다. 단지 저 깊숙한 인간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에고를 억제하여 덜 외롭도록 노력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외로움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물론 에고로부터 들려오는 달콤한 유혹이다. 인간 내면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울림이 존재한다. 하나는 인간 심연에서 들려오는 진리의 소리요 또 하나는 무법자 에고로부터 들려오는 사악한 목소리다. 우리가 홀로 되거나, 주위로부터 소외되거나 무관심의 대상이 될 때 에고로부터 들려오는 파괴적 속삭임은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 결과물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다. 따라서 홀로 되거나 소외와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달콤하지만 사악한 존재를 어느 정도는 멀리할 수 있다. 


전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 더 외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 상대방에겐 죄악에 가깝다. 누군가는 ‘상처가 두려워 사랑을 멈출 수는 없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전자는 이런 분들에게만 시도할 가치가 있는 제한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이 용감한 분들에게 상처는 충분히 극복 가능한 일상 중 하나일 테니까. 


하지만 후자는 본인과 더불어 주위의 노력이 더해져야만 외로움을 격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인데, 행복지수 세계 1위 덴마크인들은 그다지 외롭지 않다고 느낀다. 이들에겐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이웃 간의 유대는 일상을 넘어 다양하게 확장되는데, 이런 이웃 공동체들은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되어 소외감과 외로움을 방지하고 유대감과 행복감을 뿌리내린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크고 작은 협동조합을 일컫지만, 굳이 그 틀 안에 가둘 필요도 없다. 필자는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주장한다. 우리 주변, 특히 시골엔 외로운 '일인 가족'이 아주 많다. 독거노인과 단독 귀농 · 귀촌 · 귀향인이 대표적이지만, 범위를 좀 더 확장하면 자식이 독립해 부부만 남은 가족과 이웃 간 갈등으로 인한 고립 세대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주변 모두가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이 숫자가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병들게 되고 치유를 위한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아니 치유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들 잠재적 아웃사이더들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구성하자. 그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애정 어린 관심을 표명하자. 그 형태가 가족 · 청년회 · 노인회 · 체육회 · 각종 작목반 등 어느 것이라도 좋다. 형식적 틀을 벗어나 진심이 담긴 말과 행동이 전제된다면 공동체는 많을수록 좋다. 더불어 이 공동체들이 구성원 각자에게 삶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도록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자. 만남의 기회는 잦을수록 좋다. 때로는 아름다운 구속이어도 좋다. 


인간은 외로움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주변으로부터 고립될 때 외로움은 증폭되고 자칫 파괴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통하여 결코 혼자가 아님을 자각하고, 누군가로부터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번 추석이 모두가 아름다운 공동체 안에서 행복한 명절이 되길 소망한다.


사족)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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