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모님의 하소연
지난 시절 여성의 삶은 '어느 시대를 살아왔느냐'와 '어떤 남편을 만났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필자 친구 중에 같은 꿈을 꾸는 철없는 친구가 있다. 경제력은 보잘것없으나 하고 싶은 일은 많고, 필력은 모자라나 베스트셀러를 꿈꾸는 필자와 닮은꼴 인생이다.
그 친구에게는 연로하신 장모가 계신다. 늙은 사위를 편한 말상대로 느낄 만큼 평소에도 격의 없이 지내는 장모와 사위다. 장인도 자식들에게도 하지 못하는 젊은 시절 객기 어린 추억까지 공유한다 하니 사위노릇은 그런대로 하는듯하다. 이런 면에서는 필자보다 몇 수 위인 게 틀림없다.
하루는 장모가 지긋한 눈길로 사위 손을 잡고 하소연한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시집와 칠십 년 넘게 결혼생활을 했는데 지나온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자식 여럿을 낳아 어엿하게 가르치고 사람 구실 하게 많들었으니 보람도 크지만, 시집살이는 질곡의 세월이었다. 특히, 영감에게는 할 말이 많다.'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어머님 제가 보기에 어머님은 누구보다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오셨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그 많은 자식들 모두 대학 공부시키시고, 능력 있는 사위와 착한 며느리도 보시고, 평생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교육자로서 살아오신 아버님도 계시잖아요."
"자식들을 정성껏 키운 건 정말 보람 있는 일이지. 잘 커줘서 고맙고. 그렇지만 그 일 빼고는 너무도 힘든 세월이었다네. 영감도 내 맘을 몰라주는 건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
"어려서 시집와 누구에게 하소연 한 번 하지 못하고 속눈물을 흘리며 버텨온 세월이었다네.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한 번쯤 결혼생활을 정리해보고 싶어. 자네가 해줄 수 있지?"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6.25와 산업화 시기를 모두 살아오신 우리네 부모님 세대는 누구도 예외 없이 삶 그 자체가 드라마였다. 특히, 그 모진 세월 속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더 큰 희생을 강요당한 어머님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친구 어머님이 그러하듯 필자 어머님도 살아생전에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당신 삶을 기록하면 책 몇 권은 족히 될 거라고 말이다.
지난 시절 우리네 어머님들이 써왔던 삶의 기록은 '어느 시대를 살아왔느냐'와 '어떤 남편을 만났느냐'라는 두 가지 핵심 변수에 따라 결정되었다. 나머지 요소들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었다. 자식 맘대로 안된다, 라는 말이 있듯 '자식'이라는 변수가 크긴 하지만 시대와 남편에는 견줄 바 못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태어남은 주어진 것이니 시대는 상수고 변수는 남편만 남는다. 그러니 여자의 삶은 어떤 사내를 만났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이 구도가 크게 바뀌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중년 이후의 남성들이 아내를 향해 분발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사족)
보통 처부모를 높여 부를 때 '장모님' '장인어른'이라 부르지만, 남녀 차별적 인식이 반영된 호칭으로 '어머님' '아버님'으로 불러도 충분하며, 친부모와 분별이 필요하거나 제삼자에게는 '장모' '장인'으로도 무방하다고 생각이다.
어쩌면 어머님은 당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우리네 어머님의 자서전을 쓰기는 어렵겠지만, 누구라도 하소연을 들어줄 수는 있다. 거창한 이벤트성 효도보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