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명절이다. 명절이 되면 기다림과 망설임이 동시에 시작된다. 서울을 탈출하면서 시작된 산골살이와 동시에 한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서울을 탈출한 대가로 인연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어려워졌고 걸려오는 전화도 차츰 줄어들었다. 그토록 아끼고 따랐던 부하직원들마저도 하나둘 멀어져 갔다. 급기야 올해는 단 몇 통의 전화로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세상과 단절은 공고해져만 갔다.
자초한 일인 줄 알면서도 걸려오는 전화가 잦아들면서 저 깊은 곳에서 불쑥거리는 서운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스로 택한 일이거늘 서운해하는 모순을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역지사지라 했던가. 내 안부전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비슷한 감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먼저 전화를 걸어보자.
전화기에 내장된 연락처를 넘겨가며 명단을 간추렸다. 혹시라도 내 전화를 기다릴지도 모를 직장 상사와 선배들을 먼저 선택했다. 그중 너무 긴 시간이 흘러 나를 기억하지도 못할 가능성이 있거나 내 연락이 반갑지 않을 수도 있을법한 명단을 지워나갔다. 그 결과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만 남는다.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다. 염려와는 다르게 모두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중 정사장님 말씀은 잊히지가 않는다.
"아이고 김상무 자네가 웬일인가? 이제 잊을 만도 한데 연락을 주셨네. 반갑네. 그리고 고마우이."
아! 내 전화를 기다리던 분들도 있었구나. 그동안 평시는 고사하고 명절에도 안부 전화도 없던 내가 얼마나 서운했을까.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다음은 후배와 부하직원 명단을 간추렸다. 자칫 전화를 받는 인사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보고 싶은 사람이 먼저 전화를 하는 게 이상치는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예상했던 대로 '먼저 전화를 드렸어야 했다'라고 무안해하는 반응이 대다수다. 그렇지만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매우 흡족했다. 물론, 평소 안부를 주고받던 친구들에게도 잊지 않고 안부를 물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외로움이라는 나무는 커져만 간다. 세월이라는 남은 식재료가 줄어들수록 지난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다. 스스로를 인연으로부터 격리시키지 말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소통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나이 먹는다는 이유로 기다리지만 말고 그리운 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