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엉덩이는 가볍게
나이가 들어 부부만 남은 공간은 와인잔과 닮아있다. 예쁘지만 깨지기 쉬운 와인잔은 섬세하게 다루어야 한다. 특히, 남편의 거칠고 미숙한 행동은 수정되어야 한다. 제일 쉬운 방법은 엉덩이를 가볍게 하는 것이다.
자식들이 짝을 찾아 떠나거나 독립하고 나면 부부만 남는다. 둘만 남으면 특정 지을 수 없는 만 가지 감정이 혼재해 공간을 맴돈다. 허전하다, 그립다, 외롭다, 홀가분하다, 여유롭다, 편하다 등등. 각자가 쌓아온 결혼생활 역사와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불안하다는 감정도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 복잡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에 자식이라는 안전장치가 제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긴 쉽지 않다.
아이들이 떠난 공간은 완충장치가 사라진 불안한 공간이다. 마치 안전핀을 뽑은 상태로 수류탄을 들고 있는 형국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내뱉음직한 말을 떠올려보자. 특히 여성 입장에서. "애들 때문에 참고 산다. 애들만 치우고 나면 보자." 아내 입장에서는 결기가, 남편 입장에서는 살기가 느껴지는 말이다.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라고 우긴다면, 자신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길 권한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섬뜩하기도 하다. 대처가 필요하다.
아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게 잘 살았으면 좋으련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상황을 슬기롭게 관리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실천하지도 못할 거창한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 자칫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지치면 곤란하다. 말이 어려우면 마라톤을 생각하라.
우선 실천하기 쉬운 것부터 해야 한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가능한 일들이다. 동혁은 '엉덩이를 가볍게'라는 행동지침을 세운 지 오래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일이면 알아서 먼저 움직인다. 절대 꾸물대지 않는다. 아내 부탁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자면 설거지, 청소, 쓰레기봉투 버리기, 무거운 빨래 널기, 침대 정리, 장보기에 동참해 무거운 짐 들기 등등.(셀 수도 없이 많지만 남자들 기죽을까 봐 생략한다.)
일에 남녀 간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다. 서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중요한 점은 알아서와 즉시다. 시켜서 하거나 미루면 늦다. 자칫 짜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체면이 깎이거나 위신이 스러지지 않는다. 자식이라는 안전판이 제거된 마당에 객기 부리다 깨진 와인잔에 생채기 남기지 말고 엉덩이를 가볍게 움직여보자.
사족)
"억울하다. 나도 할 말 많다."라는 남자들도 있겠지만 생략하는 게 좋겠다. 따져봤자 본전 건지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