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하지 못한 이야기

바람도 아닌 것이 스쳐 지나간다.

by 도시탈

# 다하지 못한 이야기


꿈같은 하루가 지났다.

그대들이 스쳐가는 인연이 아니길 소망하며 미처 다하지 못한 얘기를 남긴다.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새벽녘 잠에서 깨어

차라리 산에서 기다리자 일찍 집을 나섰다.

그 탓에 준비해 간 따뜻한 물은 식어버리고 커피 맛이 별로가 되었지.

미지근한 커피를 맛나게 마셔주는 친구들이 고맙더라.


그대들과 첫 만남을 고대하다

이처럼 외진 산골에도 친구가 있다 알리고 싶어

시기 어린 시선 뒤로하고 '고대 82 산악회'라 써 붙이는 객기도 부려봤지.

예상보다 더한 뜨거운 반응에 신바람이 절로 나더라.


그대들 대부분이 낯선 얼굴이지만 오랜 지기처럼 친근한 얼굴이더라.

아마도 밴드에서 자주 보았기 때문이리라.

언제부턴가 산골생활의 유일한 즐거움이 밴드에서 그대들 얘기를 듣는 거였지.

아들 녀석이 폰 중독이라 놀려도 칭찬으로 들리더라.


바람도 아닌 것이

그대들은 내 맘을 흔들고 떠나버렸다.

야속한 친구들.

하지만 이 달콤한 추억으로 다시 만날 그날까지 버텨보리라.


얘기했던가?

제아무리 눈꽃이 예쁘다 해도 사람보다 못하다고.

그대들 미소가 이 세상 어느 꽃보다 아름다운 꽃이라고.

천하제일 남덕유산 눈꽃보다 그대들이 더 아름답더라.


어느 해 봄 서울을 떠나 지리산에 둥지를 틀었고

대간길을 배회하다 남덕유산 자락에 온전한 삶터를 마련했지.

이제는 회색도시를 버리고 곶감 농사를 지으며 촌부로 살아간다.

그대들 응원을 자양분으로 진짜 농군을 꿈꿔보리라.


아침이면 눈꽃 품은 설산이 그립거든

밤이면 쏟아질 듯 총총한 밤하늘의 별이 그립거든 언제든 찾아오시게.

바람도 아닌 것이

그리움을 흩뿌리며 떠나간 그대들을 이제 용서하리라.


#기다림은 늘 힘들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어릴 적 명절마다 대처로 나간 형을 기다릴 때도 그랬고

짝사랑 여인인 듯 아들 녀석 소식을 기다릴 때도 그러했고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던 짝지를 기다릴 때도 그러했다.

누구나 간절한 대상에 대한 기다림은 힘이 든다.
그 기다림은 바람이고, 희망이고, 설렘이지만
때로는 만나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두려움이 동반되는 설렘이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연초 연간 산행 계획을 보고 또 하나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일 년 농사를 준비하며 괜스레 바빴던 봄부터
농사 망친다고 작렬하는 태양을 원망하던 여름을 거치며
기특하게도 탐스럽게 익은 미자를 시집보내던 가을까지 기다렸다.


긴 기다림 끝에 지리산을 찾아 나선 그대들과 얼굴을 마주 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다.
누구는 익숙하고 또 누군가는 낯선 얼굴이지만,
그대들은 모두 내게 그리움과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만남도 잠시 그대들은 다시 대처로 떠나버렸다.
어릴 적 형이 떠나버렸던 그놈의 대처로 그리움만 남기고 되돌아갔다.
내겐 다시 기다림만 남았다.
기다림은 늘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