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링 보트에서 일을 하는 나의 플랫 메이트 앤디는 코로나로 인한 대대적인 지역 봉쇄로 직업을 잃었다. 내가 내는 방세와 남자 친구인 스캇이 주는 약간의 집 사용료, 간헐적으로 오는 에어비앤비 손님들의 숙박료가 실직한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자금원이었다. 원래부터도 자신의 방을 민박 손님들에게 내어주고 심심찮게 용돈벌이를 하는 그녀였지만, 실직을 한 이후로는 그것이 그녀의 주요 생계수단이 되었다.
사실 앤디와 내가 사는 집은 민박집으로 사용하기엔 낡고 허름하긴 한데, 그래도 위치와 가격이 좋은 덕에 오직 ‘1인’의 숙박객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손님들이 찾아와 짧으면 2-3일, 길면 일주일씩 머물다 가곤 했다.
앤디네 민박을 찾는 손님들은 커플이나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이라 그런지, 민박 손님들이 찾아올 때면 우리는 종종 그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눌 일이 많았다. 그중엔 짧은 시간 동안 서로 꽤나 좋은 인상을 주고받아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인연을 맺은 손님 중 한 명이 네덜란드에서 온 헬마 아줌마이다.
헬마 아줌마는 60대의 나이에 혼자 배낭을 메고 호주로 떠나온 여행객이었다. 활짝 웃을 때면 잔뜩 주름이 지는 얼굴과는 달리 탄탄하고 건강해 보이는 몸에 본인의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있던 헬마 아줌마. 그녀는 아이들을 다 키우고 시집 장가를 보낸 후, 늦은 나이에라도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고 싶어서 배낭을 메고 호주로 떠나온 분이셨다. 60대에 홀로 떠나는 배낭여행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한국 여행에서 그런 분을 만났더라면 ‘어르신’이라는 느낌 때문에 조금은 어색하고 어려웠을 텐데, 존대와 반말의 구분이 없는 영어 덕분에 나이와 상관없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헬마 아줌마는 화통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지녀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편하고 즐거웠다. 그녀는 먼저 가서 말을 붙이고 싶은 사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기운을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늘 강조했듯, 온전치 않은 언어 속에서도 마음은 통하고 좋은 사람의 에너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언어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에너지가 더욱더 오롯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헬마 아줌마는 앤디네 민박에 고작 3일을 머물다 떠났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나눈 마음의 크기가 꽤 컸나 보다. 나는 헬마 아줌마가 떠난 후에도 가끔씩 그녀 생각이 났고, 그녀 역시 내가 생각이 났는지 아줌마는 한 번씩 나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주시곤 했다. 여전히 호주에 있는지, 건강은 어떤지, 남자 친구는 생겼는지 등등..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여도 하루아침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 끊어지는 인연이 있는데, 그렇게 짧은 시간을 잠시 스치듯 만났음에도 그 만남의 소중함을 귀히 여겨 이어지는 인연도 하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호주에선 완벽한 이방인인 내가 ‘앤디네 민박’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객, 다른 도시에서 출장을 온 사람, 파도를 즐기러 온 서퍼들, 새로운 방을 구 할 때까지 잠시 머무는 학생 등등.
완전한 타인들을 한 지붕 아래 객원 식구로 받아들이는 것은 참 미묘한 경험이었다. 같은 집에서 누군가와 단 며칠이라도 같이 산다는 건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까’라는 걱정을 낳기도 하지만, 일단 우리 집에 온 손님이기에 ‘잘 대접해줘야 한다’는 이상한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기꺼이 내가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게 되고, 그들이 혹시 불편하진 않을지 신경이 쓰인다. 앤디야 민박 운영을 통해 금전적 수익이 나기도 하고 그들이 편히 묵고 가게 해주는 게 호스트로서 그녀의 의무였겠지만,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이 집에서 머무는 손님들의 안위를 신경 썼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 시간은 나의 무의식이 나를 위해 만들어낸 인간성 회복의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호소하며 사람을 멀리했고, 호주에 간 이후로는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단절한 나였다. 앤디네 민박과 그곳을 찾은 손님들은 내가 다시금 사람들 곁에서 어우러지며 즐겁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모두 서로의 곁에서 살을 맞대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니까.
얼마 전에도 헬마 아줌마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이제는 거의 2년 가까이 전에 먹었던, 내가 나눠주었던 그때 그 만두가 참 맛있었다며. 레시피를 알려 달라 했는데 왜 아직도 안 알려 주냐면서. 내가 김밥을 직접 만들어서 나눠준 탓인지 헬마 아줌마는 같이 먹은 만두도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그건 냉동식품인 ‘고향만두’인데. 아무래도 ‘고향만두’와 가장 흡사한 레시피를 찾아서 보내드려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마땅한 영어 레시피를 찾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