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잔디를 보자마자 '잔디'라는 이름을 딱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탈색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릿결이 다 상했었다. 머리카락이 끊어지기도 정말 많이 끊어졌었는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정수리 쪽에 머리카락은 아예 다 끊어져서 짧은 머리카락이 솟아있었다. 정수리에서 송송 솟아있는 그 모습이 잔디 같아서 다음에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잔디라고 지어야겠다고 이미 정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를 보자마자 아껴놓았던 그 이름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잔디랑 다시 돌아가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동장을 뚫고 꼬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럴 줄 알고 어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반려동물 용품은 어디서 파는지도 몰랐는데, 모든 물건이 다 있는 그곳에 가니 역시나 내가 필요한 것이 다 있었다. 반려동물 사료는 물론이고 침대, 샤워젤까지 사놨다. 이미 집에 가서 할 일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생명을 앞으로 책임져야 하다니! 물론 한 달뿐이지만 처음이라 설레서 기차 안에서 잠들 수가 없었다. 거의 태어나자마자 보호소에 입소해서 보호소가 세상의 전부였던 너에게 냄새 맡을 것으로 가득한, 새롭고 포근한 세상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동장 속에 있는 것이 답답할 텐데 낑낑 소리 하나 안 내고 가는 잔디가 대견했다. 잔디가 뭘하고 있나 궁금해서 이동장 속을 들여보다가도 3개월밖에 안된 이 아이가 낯선 장소에 가는 길이 편하길 바라며 궁금증을 참고 괜히 창문 밖만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