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마음 먼저 봐주세요

- 정리하며 만난 사람들

by 이혜경 Jan 31. 2025

"이건 버려주시구요, 아.. 이것도 버려주세요"

정리를 의뢰하신 30대 아들고객님은 집안 여기저기를 다니며 연신 배출해 낼 물건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내 물건을 왜 자꾸 버리라고 그래? 왜 니 맘대로 해?"

"엄마, 이거 갖고 있어서 뭐 할라고 그래. 다 쓸데도 없는 걸"

"왜 쓸데가 없어. 알지도 못하면서"


아침부터 우리를 반갑잖게 맞으신 어머니는 아들이 골라낸 물건들을 빼내 다시 원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으시느라 바쁘셨다. 아들과 어머니 두 분이 사시던 집안엔 어머니의 오래전 물건들이 많기는 정말 많았다.


"엄마, 이러면 일이 안된다고"

"버리려면 니 껄 버려 왜 내 물건만 버리고 그래"

"내 껀 버릴 게 없다고"


그런데 사실 아들 살림도 만만치는 않았다.

하필 어머니 방 담당이었던 나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한가운데 서 있는 처럼 위태위태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지 않던가. 더구나 장성한 30대 아들의 우격다짐에 전세는 아들 쪽으로 기울어 버렸다.

전의를 상실한 어머니는 이제 거의 아들이 버리라면 버리고 두라면 두는 정도까지 와 버렸다.

정리하는 나만 좌불안석이 되어 아들을 살짝 말려보기도 하면서 어찌어찌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사이 어머니가 안 보이시기에 가만 생각해 보니 화장실에 들어가신 지 한참이 되었는데 나오시질 않았다. 한참만에 나오신 어머니 눈이 빨갛게 퉁퉁 부어 계셨다.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나오신 모양이었다.



 

시집간 딸의 요청으로 친정집 살림을 정리하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친정부모님을 위해서 인지 친정집에 들렀을 때 편안치 않은 본인을 위해서 인지 케이스마다 정확한 사연을 알 수는 없지만 이번 작업은 정말 녹록지 않았다.

따님의 배출 요청에 어머님이 완강히 거부를 하시는 바람에 작업을 거의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이걸 다 끌어안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꺼야?"

"니가 뭔 상관이야 이건 내 살림인데"

"엄마, 내가 엄마 깨끗하게 살라고 좋은 마음으로 하면 엄마도 좀 따라야 되는 거 아냐?"

"내 살림을 니 맘대로 버리는 걸 내가 그냥 구경만 하라고"


우리가 있건 말건 모녀가 서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울고 난리가 아니다.

"관둬 다 집어 쳐"

이상하게도 딸에게서 이쯤 나오면 오히려 어머니는 좀 진정이 되신다.

그리고는 작업은 또 어찌어찌 진행이 된다.




아직까지는 이런 분쟁에 휘말려 작업이 취소된 적은 없었다. 물론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작업은 마무리되는데 대개는 자식의 의도대로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작업을 마치고 나서 부모님은 만족을 하셨을까 내심 궁금했다. 심지어는 병이 나지는 않으셨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가끔씩 문의받는 부모님 댁 (혹은 같이 살고 있는) 정리에 대해 제일 먼저 이런 질문을 한다.


"부모님과 충분히 의논은 되셨을까요?"


위치가 어디인지, 몇 평쯤인지, 거주 인원이 몇 명인지, 거주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우선 의논이 충분히 되어야만 그다음 질문들이 의미가 있어진다.

최근에 2년을 설득해서 부모님 댁 정리를 의뢰한 3남매를 만났다. 1톤 트럭 2대가 와서 실어 날라야 할 만큼 많은 물건을 폐기했지만 아무도 울고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넓고 간결해진 집안을 둘러보시며 두 분은 좋아하셨다.

이별은 준비가 필요할 때가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낡고 오래되었고 지금은 딱히 쓸모가 없고 아깝게 자리까지 차지하지만 나의 젊은 시절, 한창때가 담겨있는 손 때 묻은 어떤 걸 내보내는 일은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쉽지 않은 결정일 수 있다.

그러니 조금만 시간을 드리자.

그러면서 오래된 행복은 최신의 행복으로 갈아 끼워 드리자.

그러면 어느새 '오래된 물건 따위'그러실 수 있다.

이전 19화 기타 영역의 분류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