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리하다 만난 사람들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가끔 '좋아요'를 눌러 주는 정도의 사이인 인친이 있었다.
올라오는 글은 대개 평범한 딸들 얘기, 고양이 얘기였는데
어느 날은 올라온 피드 가득 우울이 담겨있었다.
간추리자면,
우리 집은 너무 엉망이다.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나를 아내, 엄마로 둔 우리 가족이 불쌍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인 '죽고 싶다'
죽.고.싶.다.는 네 음절이 마음에 와서 콱 박히는 것만 같았다.
이런저런 계획이나 고민 없이 그냥 그녀에게 바로 DM을 보냈다.
'정리가 안 돼서 사람이 죽고 싶다 잖아’ 그저 그 생각만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소개하고 제일 힘들게 하는 곳이 어디인지, 우선 한 공간만이라도 같이 정리할 의향이 있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주방을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
날짜를 약속하고, 그녀에게서 몇 장의 주방 사진을 받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필요한 수납도구의 품번과 갯수를 정해주고 직접 준비하도록 했다.
소통하는 내내 그녀는 적극적이었고 생기가 느껴졌다.
드디어 방문하는 날.
그전에 주소를 확인하면서 살짝 앗!! 했었다. 내 예상범위 끝자락에 있었으므로.
두 시간 조금 못 되는 시간이 걸려 경기도의 읍, 리 소재지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웬 여자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주러 온다 하니 의심스러웠던 건지 궁금했던 건지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동생도 같이 나를 맞았다.
두 자매를 앞에 두고 주방 현장실습이 시작되었다.
그녀들은 기대하는 듯했고 사실 나도 조금 신선하게 설렜다.
살림살이를 다 꺼내어 종류별로 분류하도록 하고, 싱크대도 한 번씩 다 닦아주고 식품은 언제 구입한 건지 날짜도 확인했다. 주방정리에 동선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도 설명하고 차례차례 자리를 잡아 나갔다.
그녀는 정말 가이드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정리하는 내내 적극적이었고 설명을 받아들이려고 열심히 애썼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주방은 아침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끔하게 빛났다.
즐거워하는 그녀 자매와 맛난 짬뽕을 먹고 집안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공간을 보고 조언해 주기를 그녀가 원했는데 집안은 좁지 않아서 활용만 잘하면 충분히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 보였다. 간단한 코칭을 마치고 그날 만남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보통 드라마 같은 스토리 이려면 그것이 인연이 되어 뭐가 어찌어찌 되거나 해얄텐데 그 후에 그녀가 나의 조언대로 집안을 바꿔 나갔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돈 모아서 나머지 영역 정리를 내게 맡기고 싶다던 그녀의 말도 아직까지는 실현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작업이 끝났을 때 ‘죽고 싶다’ 던 글만큼 그녀가 우울해 보이진 않았다.
아니 그녀는 행복해했다.
나는 그냥 그거면 되었다.
돌아오는 길 나도 행복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