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이거 말고 다른 바구니는 없나요?”
일 년에 한두 번쯤 고객님들께 듣는 질문이다.
정리 작업을 하다 보면 부득이 바구니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자잘한 이런저런 물건들을 분류해서 정리해 넣자면 바구니는 필수다. 서랍도 휑~ 하니 빈 공간에 이것저것 넣게 되면 섞일 수밖에 없으니 바구니로 구획을 나누어 주게 된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정리와 바구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고객님이 가지고 계신 튼튼한 신발상자나 선물상자들이 있다면 요긴하게 쓰이기도 하는데 온 집안을 하루 만에 정리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그 정도 수량의 바구니가 준비되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필요한 바구니는 대개 우리가 준비하거나 간혹 고객님이 준비하기도 한다.
"왜 그러실까요? 혹시 맘에 안 드세요?"
"아... 저는 이런 바구니가 쓰고 싶어서요"
'혹시...'
'역시 또 그 사진'
정말 신기하게도 고객님이 레퍼런스로 보여주는 사진의 80% 정도는 보기 전부터 예상이 가능하다. (최소한 내 주변의) 전문가들은 선택하지 않을 그 바구니들이다.
그런데 각종 SNS에 예쁘게 꾸며진 집에 '예쁘게' 들여놓으니 구매욕구가 막 생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작업은 정물의 배치가 아니라 생활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의 정리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중요한 고려 요소지만 첫 번째가 될 수는 없다.
정리하는 당일뿐 아니라 생활하는 내내 유지관리가 가능하도록 공간을 구성하고 활용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집집마다 구조도 다르고 살림양이 다르다. 가족 구성원이 다르고 삶의 패턴도 다르다. 단순히 누군가의 집에 들여놓은 예쁜 어떤 것을 무조건 따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정리할 물건은 넘쳐나는데 55cm 폭의 선반에 고객님이 두고 싶은 바구니 길이는 28cm, 구체적으로는 비유하자면 라면이 7~8개쯤 들어가는 길이이다. 선반의 나머지 부분 27cm는 사용하지 않거나 또 한 개의 바구니를 추가해야 한다. 공간의 비효율이거나 바구니 비용의 낭비인 셈이다.
모델하우스라면 얘기는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모델하우스에서 살고 있지 않다.
사진을 보여주며 요청하는 경우는 그나마 조율하는 과정이라도 거치는데 미리 수납도구를 구입해 놓은 경우는 정말 난감하다. 용도에 맞지 않아서 활용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으니 추가 구입이 필요하고 이것은 비용의 낭비이자 플라스틱을 과도하게 구입하게 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정리수납 강의 시간에도 강조하는 것은 '수납도구 미리 구입하지 않기'다. 정리 계획을 세우고 공간의 크기를 보고 살림양을 체크하고 필요한 바구니의 크기도 대략 결정한 후 마지막에 하는 일이 바구니 구입이다.
그리고 서두의 질문에 담긴 정말 중요한 또 하나의 의미는 나 조차도 늘 고민하고 있는 '플라스틱' 사용의 문제이다. 한두 개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다 보니 고객님의 거부감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또 역시 한 두 개 필요한 정도가 아니다 보니 종이나 나무 등 다른 소재로의 대체를 생각하기에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너무 과도해지고 집안의 다양한 상황이나 필요한 크기에 대처하기에 다른 소재의 바구니는 다양성도 떨어진다. 그러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아직은 부득이 플라스틱 바구니를 쓸 수밖에 없다.
정리가 필요한 대부분의 집에는 명확하게 분류되지 못한 채 사용기한이 지나버려서 결국 버려지게 되는 물품들, 음식물들이 굉장히 많다.
이때 바구니를 활용해서 정확하게 분류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 준다면 날짜를 지나치지 않고 구입한 물품 전부를 정상적으로 소비하는데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플라스틱 바구니의 수명은 길다.
최소량만 사용하고자 노력하고 수명이 다 할 때까지 활용한다면 긍정적인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작업이 끝날 때마다 '빌려 쓰는 지구'에 죄짓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고객님, 저도 플라스틱 바구니 좋아하진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