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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눔 맞으실까요?

-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by 이혜경

"이건 입힐 꺼구요 이건 나눔 봉투에 넣어주세요"

"이것도 나눔이요" "이것도 나눔"


아이의 물품을 분류하는 고객님의 분주한 손길에 내심 걱정이 조금 담긴 질문을 해 본다.


"가져가실 분이 있으신 걸까요?"

"아... 아는 동생 주면 돼요"

"아.....네....."


고객님 댁 아이의 옷을 정리하기 전에 분류하는 시간, 보풀도 가득하고 세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얼룩도 있는데 다 괜찮다신다. 다 가져가는 동생이란다.


자아 A : '얼마나 친한 동생일까? 진짜로 반가운 마음으로 받을 사람일까?'

자아 B : '다 가져가는 동생이라잖아. 뭔 걱정이야? 오지랖 떨지 말고 일이나 해'


일단 자아 B의 승리다. 찜찜한 마음에 주저하며 나눔 봉투에 옷을 담던 손길이 이젠 빨라졌다.

그리고 사람 간의 관계는 정말로 알 수 없으니 고객님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




정리를 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동시에 계속 쓸 건지 내보낼건지 선택을 해야 한다.

내보내는 일도 다시 선택이다. 그대로 쓰레기로 버릴 것과 누군가에게 가면 요긴하게 쓰일 '나눔'으로 구분해야 한다.

SNS를 보다 보면 심심찮게 '나눔'으로 맘 상한 이런저런 사연들을 읽게 된다.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을 친정어머니께 드린 올케에게 화가 난 시누이 사연, 냉동실에서 이미 먹을 때를 넘긴 오래된 음식물을 주시는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 사연, 얼룩 가득해서 사용이 힘든 물건을 나눔 받아서 화가 난 사연 등등.


'왜 화가 났을까?'

그 나눔에 빠진 마음이 있어서 일 듯 싶다.


'나도 좋아하지만, 귀하게 생각하지만, 아직 너무 괜찮지만, 쓰고 싶지만......'을 전제로

너무 많아서, 아이가 이미 커서, 주고 싶어서, 어울릴 것 같아서, 좋은 거라서 줘야 한다.


그런데 '유통기한 지나서, 쓰기 싫어서, 먹기 싫어서, 낡아서' 주는 건 버림과 다를 바가 없다.

나눔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우리 집 아이들이 커서 필요는 없는데 아직 예뻐서 누군가의 집에 가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생각한 인형들이 있었다. 깨끗하게 세탁하고 잘 말려서 비닐봉지에 넣어 '세탁했어요.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라벨을 붙여 사람이 많이 다닐 만한 곳에 내놓은 적은 있다.


아무도 안 가져가면 쓰레기로 처리해야 하니 몇 시간쯤 후에 다시 가봤는데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들과 열심히 반죽하고 빵을 기다리던 제빵기도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을 때 고장 아니라고 라벨 붙여 내놓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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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는데 고장 아닌 스팀청소기도 안 쓴 새 지갑도 그렇게 내놓으면 사라진다.

내 나름 아직 쓸만하거나 새것이지만 주변인에게 주어서 좋아할지 어떨지 모르겠는 물건을 처리할 때 쓰는 방법이다. 가져가는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최근엔 유통기한 조금 남은 새 영양제와 커피믹스를 새 지퍼백에 넣어 내놓았더니 또 없어졌다.

아마도 나는 이런 방법을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는 나만의 나눔 방법.


지금 무언가를 나눌 계획이 있다면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자.

버리는 마음인지 요긴하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인지.

혹시 전자라면... 그만 두자.

나눔에는 정말 예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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