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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써 가는 드라마

- 딸내미들 이야기

by 이혜경 Apr 01. 2025

잠은 벌써 깼는데 이불속에서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꼼지락 꼼지락 꼼지락.

애꿎은 휴대폰만 이리 누르고 저리 누르고 못 살게 군다.

생각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 커피도 내리고 화장실도 한번 다녀오면 좋으련만 하필 거실에서 잠든 딸내미가 아직 곤히 자고 있으니 이불속을 벗어나는 일은 좀 미뤄보기로 한다.

아직 여덟 시도 되지 않은 시간, 아홉 시까지만 기다려 보자.

일주일 동안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시간에 움직여 돈벌이에 나서는 딸내미의 달콤한 주말 늦잠을 방해하는 눈치없는 오두방정 엄마는 되고 싶지 않은데 이불속에서 시간을 때우는 일이 의외로 고역이다.


눈치 없이 혹은 의도적으로 시어머니가 아들 부부 깨기도 전 식전 댓바람부터 부엌에서 덜그럭 덜그럭거려서 며느리 잠을 깨운다더니 아들도 없는 내가 그게 무슨 상황인지 막 이해가 되려는 참이다.

시어머니는 그냥 아침이 되었고 잠이 다 깨버렸으니 얼른 일어나 할 일을 했던 것뿐일 수도 있겠다.



지난 주말에 예정되어 있었던 나의 일정들이 갑자기 연기가 되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연휴가 생겼고 수원에서 따로 지내는 작은딸도 별 일정이 없다기에 대충 보따리를 꾸려 작은 아이 집에 왔다.

4계절 세워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반기는 집

가끔 접어서 넣어두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해보기도 하는데 세월 지나는 거 보면 크리스마스트리 세울 계절도 눈 깜짝할 새 오기는 하는 것 같다.


처음 취직하고 새벽에 일어나 출퇴근해 보더니 두어 달만에 포기하고 수원으로 살림을 난지도 어느새 꽉 채운 7년이 지나고 벌써 8년 차, A4종이 가득 필요한 것들을 메모하고, 조그만 캐리어에 어설픈 살림살이 몇 가지 넣어 시작한 분가는 이제 냉장고도 소파도 침대도 있는 한 살림으로 커져버렸다.

 

7년전 어설픈 분가 보따리


지난번에 다녀갔을 때 남친과 이별 이슈도 있고, 집이 구축이라 그런지 왜 그리 추운지 추운 집에 맘도 추운 애(사실 30이 넘었는데) 혼자 두고 가려니 맘이 얼마나 않좋던지 그새 또 오고 말았다.

아이들 멀리 타국으로 보낸 엄마들은 어찌 사는지 아이들에 대해서 만큼은 새가슴인 나 같은 사람은 아이들도 엄마들도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우리는 공통적으로 다이어트 목표가 있는지라 풀때기와 단백질 식사를 지긋지긋해하다가 또 그러는 우리가 웃겨서 웃다가, 8~9 천보 걷기의 동반자가 되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하지 못했던 해묵은 내 푸념을 들어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주말은 어느새 훌쩍 지나간다.



돌아오는 아침.

아이가 출근한 빈 집에서 마른빨래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밀고, 그릇들을 제자리에 올려두고 문은 잘 잠겼는지 아까도 확인했으면서 굳이 온 집을 한 바퀴 돌아 한번 더 확인하고 현관 앞에 서서 집안을 한번 더 스캔하고 마음으로 '우래기 잘 지내고 있어. 엄마 또 오께' 인사도 하고 현관을 나선다.

문이 잘 잠겼는지 문고리를 당겨 확인하면 귀가 전 절차는 끝난다.


요즘 아이유 모녀가 나오는 드라마가 인기라지.

드라마는 TV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매일매일도 드라마다.

짠내도 꽃내도 나는 드라마.

우리가 주인공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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