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그 관성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시간이 가진 관성의 힘으로
현재의 온전한 쉼을 누리지 못하고,
자꾸만 일하고 있는 과거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
쉬면서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이 양가감정의 줄다리기에서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출근을 안 한 지 2주가 훌쩍 넘어가니
평소에는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일상의 의식들을
점점 쉽게 해내기가 어렵다.
'눈뜨자마자 씻는 것'이 첫 번째다.
보통은 6시에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는
곧장 욕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알고리즘이 선정한 유튜브 채널을 들으며
기계적으로 모든 준비를 마친 후
7시 30분~ 35분 사이에 집을 나섰다.
전철역에 도착하면
항상 같은 플랫폼에서 같은 시각에 도착하는 열차에 올라
이름은 모르지만 서로 얼굴은 아는 다양한 사람들과
항상 비슷한 표정과 자세로
출근을 함께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눈뜨면 첫 생각이
'오늘 굳이 씻어야 하나?' 이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줄곧 집에만 있을 텐데
그냥 지나갈까 하는 유혹이 강하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해 온 루틴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시간에 맞춰 생각하기'가 두번째다.
나는 시간이나 기일을 잘 지키는 편이다.
시간에 대한 강박이 강하고 성실하신
아버지를 닮은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방 출신인 나는, 고3 때 아버지 차를 타고 서울에 논술고사를 보러 왔었다.
시험 시작이 9시였는데,
우리는 무려 새벽 5시쯤 도착을 했다.
(길이 막힐 것을 우려했지만, 경부고속도로엔 화물차 몇 대와 우리 밖에 없었다.)
다행히 학교 경비 아저씨의 따뜻한 배려로
그 새벽 아무도 없는 캠퍼스의 건물과
고사장 강의동을 미리 둘러보며 긴장을 풀 수 있었고,
그해 봄 나는 그 학교에 입학했다.
회사에서도 각종 미팅과 회의에서 시간 엄수는 중요하다.
특히 거래처와의 미팅에서 늦는 것은
신뢰의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므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시간과의 싸움,
바쁜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난 요즘,
아무도 날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내가 나를
끈질기게 '그 순간'으로 데려간다.
'지금쯤이면 전철역 나와서 급히 걷고 있겠군.'
'사무실에 도착했을 시간이네.'
'주간업무 제출하는 날이네.. 회의실 예약은 누가 하고 있을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면
참신한 무언가가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막상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고
나는 제자리에만 머무는 것 같아서
계속 조바심이 난다.
쉬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이 불편한 양가감정의 줄다리기에서
나는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