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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Sep 16. 2022

산 좋아하세요?(2)

등산 동호회에서 생긴 일

무엇이든 처음의 기억은 강렬하다. 선과 나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동대문 등산용품점에서 산 등산화와 배낭, 캡 모자, 기능성 원단의 긴 팔 티셔츠와 바지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생수와 간식, 간단한 도시락도 챙겨 왔다. 새 신발과 가방, 옷을 장착한 우리는 누가 봐도 등산 초보자의 포스를 강하게 풍기며 출발 장소에 도착했다. 이제 드디어 제대로 된 첫 산행에 나서는 것이다.


저 멀리 집결 장소가 보이면서 긴장된 우리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열댓 명의 남자들이 완전군장(?)을 하고 모여있었는데 다행히 우리처럼 초보자로 보이는 여자들도 몇 명 서있었다. 근데 이거 3040 등산모임 아니었나?!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남자들의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나이가 들어 보였다. 구릿빛으로 검게 탄 피부를 감안해도 평균 나이대가 40~50은 족히 되어 보였다. 다이어트가 목적이었던 선은 의외로 뚱뚱한(?) 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더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 어차피 산행이 목적이었으니까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내심 실망한 마음을 감추고 선과 나는 쭈뼛쭈뼛 인사하며 일행에 합류했다.    


시간이 되자 당일 산행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앞에 나섰다. 인터넷 카페의 등산 동호회 모임이다 보니 편의상 닉네임을 사용했다. 자신을 “블루버드”라고 소개한 그는 오늘 북한산 초보 산행의 일정과 코스를 설명하고 안전에 관한 몇 가지 주의사항을 군 조교처럼 안내해 주었다. 산행 지기인 그가 선봉을 서고 선두와 후미에 숙련된 등산 멤버 2~3명이 함께 등산 초보자들을 솔하여 가기로 했다. 모두 열대여섯 정도의 인원이었는데 출발 전에 둥글게 서서 간단한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독야청청이라고 합니다. 회사원이고 등산모임 2년 차예요.”


“북악 스카이. 고인물입니다~ 안전한 산행 합시다!”


“체리핑크예요. 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잘 부탁드려요.”


 “식객입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요, 오늘 메뉴 기대하세요~”


 …


기존 멤버들의 소개가 끝나고 선과 나의 차례가 되었다. 무대 공포증으로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 마시마로 에요. 회사원이고, 등산은 처음이에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데미소다입니다. 초보구요, 잘 부탁드려요..”


좋아하는 캐릭터와 음료수를 닉네임으로 한 선과 나, 또 다른 신규 멤버들의  자기 소개로 인사가 모두 끝났다.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복장을 보니 우리는 새 발의 피였다. 기존 남자 멤버들은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도 하듯 키 높이 배낭과 차원이 다른 장비들을 장착하고 있었는데 과연 저 모습으로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크림만 바르고 온 우리에 비해 마스카라 풀 메이크업과 귀걸이 목걸이까지 착용하고 온 여자 멤버들의 모습도 신기했다. 어쨌든 부담스러운 첫 대면의 시간이 끝나고 일행은 드디어 북한산으로 힘차게 출격했다. 등산 초보가 북한산을 첫 산행으로 선택한 것이 어떤 실수였는지 까맣게 모른 채.



(3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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