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여길 나가고 싶다. 문밖으로 도망치며 생각했다.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그들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이상한 일은 토요일에 발생했다. 유난히 출근하기 싫은 아침이었다. 밥만 잘먹어도 칭찬받던 어린시절 꿈을 꾸고 있었는데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소리를 듣고 깨어나 마른세수를 했다. 얼굴을 문지르는 손가락 끝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미간의 정 가운데에서. 이제 막 돋아난 뾰루지를 더듬다가 잠에서 깼다.
내가 일하는 피부관리실은 성형외과 건물 가장 안쪽에 있다. 출근 하자마자 보이는 대기실에는 사람이 넘쳐나 앉을 곳이 없었다. 성형외과에서는 시술이나 수술한 고객을 대상으로 피부관리를 연계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평일에는 바쁜, 젊고 어린 여자들이 주로 토요일에 이곳을 찾았다. 탈의실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사람이 가득찬 대기실을 지나서 관리실로 들어갔다. 관리실 안에 있는 수십 개의 침상이 있었다. 작은 침대가 줄 맞춰서 촘촘하게 붙어있어서 군대의 내무반 같다고 늘 생각했다. 근무 시작 시간이 되자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곧 관리실로 몰려왔다. 관리실의 모든 침상에 고객들이 올라와 누웠다.
피부관리사의 일은 반복적인 일을 쉴 새 없이 계속 하는 것이다. 나는 영혼 없는 표정으로 바퀴 달린 동그란 의자에 앉아서 내 앞에 누워있는 고객에게 시술용 마취 크림을 바르고 있었다. 그 일을 마치자마자 그 옆의 침대에 붙어있는 스톱워치가 울렸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발로 땅바닥을 밀어내며 재빠르게 옆으로 이동했다.
“이제 마무리해 드릴게요.”
기계적이고 친절한 말투로 말하고는 고객의 얼굴에 붙어있는 고무팩을 들어 올렸다. 고무팩에 떼어진 얼굴에 토너를 묻힌 화장솜을 문지르고 있으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의 배 바로 앞에는 누워있는 고객의 정수리가 있었다. 소리가 들렸으면 어쩌지, 생각하면서 허리를 세웠다. 다시 고개를 숙여서 고객의 얼굴을 바라보니 우뚝하게 솟은 콧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콧대를 중심으로 피부결을 따라서 고객의 얼굴에 수분크림과 선크림을 발라 마무리했다. 그 고객이 관리실을 떠나자 그리고 다음 대기 고객이 침상에 들어와 누웠다.
아까 보낸 여자와 새로 들어와 누운 여자의 콧대가 비슷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다시보니 얼굴이 이상할만큼 비슷했다. 정신없이 바빠서 뭘 잘 못 본건가? 그때 그 옆 침대에서 스톱워치가 울렸다. 아까 마취 크림을 바른 고객이었다. 얼굴에 듬뿍 올린 마취 크림을 거즈로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뭔가 이상했다.
이 여자도 아까 그 여자와 같은 얼굴이었다.
동그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허리를 세워서 주변을 둘러봤다.
옆 침상의 여자도, 그 앞 침상의 여자도, 앞 침상의 옆 침상의 여자도 같은 얼굴이었다. 심지어 갑자기 일어난 나를 쳐다보는 동료 피부 관리사까지도 똑같은 얼굴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침상과 침상 사이를 걸어 다니며 누워있는 얼굴들을 보았다. 일렬로 늘어선 침상에는 단발, 생머리, 파마머리만 다를 뿐 같은 가운을 입고 같은 얼굴로 누운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얼굴을 계속 보다 보니 특징이 사라진 밋밋한 느낌마저 들었다. 같은 얼굴의 동료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밋밋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뭐해요?”
“아, 아니에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일단 나가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관리실 출입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하지만 나의 손은 문고리를 한 번에 돌리지 못하고 삐걱댔다.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체중을 실어서 어깨로 문을 밀었다. 문은 열리지 않고 쿵, 쿵, 하는 소리만 났다. 열리지 않는 문에서 뒤돌아서서 숨을 고르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리자 나는 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요란한 소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 맞춰있는 침상에서 고개를 들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을 똑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똑같은 눈 수십 개가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다시 뒤돌아섰다. 식은땀이 났다. 숨을 잠깐 참고 힘을 줘서 문고리를 돌리자 드디어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