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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령 Jul 07. 2024

얼굴(2)

같은 것과 다른 것에 대한 짧은 이야기

신체와 마음이 호응하지 못한 나머지 나의 몸이 관리실의 문밖으로 쏟아지듯 튕겨 나와 바닥으로 엎어졌다. 대기실에서는 사람들이 차분하게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관리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대기실의 사람들도 모두 같은 얼굴이었다. 여자와 남자, 접수대의 직원까지 다른 헤어스타일과 다른 옷을 입었을 뿐 다 똑같은 얼굴이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봐도, 눈을 꽉 감았다가 떠도 마찬가지였다.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내 앞에 있던 밋밋한 얼굴의 누군가가 넘어진 나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내가 얼떨결에 그 손을 잡고 일어나자, 그는 자신이 원래 가던 길로 나를 지나쳐갔다. 그 사람이 지나간 곳을 봤지만, 그는 이미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 대기실의 사람들과 섞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곳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 피부관리실의 유리문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 나왔다. 병원 복도에도 밋밋한 얼굴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토요일은 성형외과보다 피부관리실에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에, 피부관리실 앞 복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방금 멈춰서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는 금방 밋밋한 얼굴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만원 경고음이 들리기 직전에 가운을 입은 긴 머리의 여성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바깥쪽으로 돌아서자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한 나를 보고 아는 사람을 본 것처럼 살짝 웃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난 그녀가 성형외과 원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운 밋밋한 얼굴 사이의 다른 얼굴. 나는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녀의 얼굴만 보였다.


그녀를 쫓아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계단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일할 때 신는 굽 높은 샌들은 복도의 대리석 바닥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계단을 내려가며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계단을 타고 일 층에 도착해서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어갔다. 이미 엘리베이터 문은 열려있었고 사람들이 모두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온 후였다.


“원장님! 원장님!”

나는 소리치며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 건물을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건물 입구로 뛰어갔다. 건물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자 하얀 가운이 보였다. 나는 더 힘차고 간절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원장님!”

그 소리에 그녀가 드디어 멈춰 섰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원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사람들이 다 똑같아요.”

“응? 무슨 일 있었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그녀는 손으로 건물 입구 한 쪽에 서 있는 거울을 가리켰다. 나는 그녀가 가리키고 있는 거울을 보았다.


그곳에는 피부 관리사 옷을 입은 밋밋한 얼굴이 서 있었다. 아까 봤던 특징 없는 얼굴. 그 얼굴의 미간에는 빨갛게 익은 뾰루지가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자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팔이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잠에서 깼다. 어딘가에 누워있었고, 배 위에는 바스락거리는 낯선 질감의 이불이 덮여있었다. 내 방이 아니라는 생각이 금방 들었다. 눈을 뜨자 폴대에 매달린 포도당 수액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상체를 세워서 일어나자, 원장이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요즘 무리하게 다이어트했나 봐. 아까 갑자기 쓰러졌어요.”

“아까……. 원장님 만났을 때요?”

“응. 아까. 일어나지 말고 좀 더 쉬어요.”

“근데 저 일이 아직 안 끝났는데…….”

“피부관리실장한테 연락했어요. 오늘은 좀 쉬어요. 근데 아까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에요. 꿈을 꿨나 봐요. 사람들 얼굴이 다 똑같아지는 그런 꿈이었어요. 그런데 원장님만 다른 얼굴이었어요.”

“그래요? 아아, 난 수술하는 사람이니까.”

원장은 횡설수설하는 나의 말에 장난스럽게 대답하고는 수액 클램프를 만졌다.


“저혈당 같으니까 이거 한 시간만 더 맞고 집에 가요. 간호사한테 말해 놓을게요.”

원장이 호출 벨을 누르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둘이 대화하는 동안 나는 간호사의 얼굴을 확인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새까만 파마머리를 하나로 꽉 묶고 있었다. 속눈썹이 길었고 새까만 눈동자에 형광등이 반사되어서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 간호사는 눈 감아도 떠오를 정도로 유난히 개성 있게 생긴 얼굴이었다. 왠지 안심이 되었다.


원장은 대화가 끝난 간호사를 내보내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더니 가운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 가볼게요. 다이어트 적당히 하고 밥 잘 챙겨 먹어요.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봐요.”

원장은 인사를 끝내고 방을 나가려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내게 말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다들 그런 걸 원했던 것 아니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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