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잔인하게 더운 여름에 대한 아주 짧은 이야기
습하고 더운 공기.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 숨이 막힌다. 잔인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세상을 아찔할 정도로 선명하게 만들다가도, 결국 뿌리 없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기운을 앗아갔다. 살아있는 푸른 식물만이 태양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간다. 하지만 식탁 위에 있는 뿌리 잘린 꽃과 줄기는 여름의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바짝 말라갔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모아 화병에 꽂았다. 여름엔 물이 필요하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물이.
지금 나의 폐에는 여름이 있다. 나의 양분을 가장 많이 빨아들이는 폐암 세포와 나는 함께 살고 있다. 얼마 전에 찍은 PET-CT에 그것이 가장 빨간 색으로 표시되어 나왔다. 의사는 포도당을 빨아먹고 가장 활발하게 증식하는 그 암세포가 화면 속 빨간 흔적이라고 말했다. 내 안에 가장 뜨거운 곳, 나의 여름. 그 존재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삶을 가장 선명하게 만들다가도, 나의 모든 기운을 앗아갔다. 나는 아무것도 이겨내지 못하고 바짝 말라갔다. 내 안의 여름에도 물이 필요했나 보다. 하지만 그 물은 적당하지 않았다. 나의 폐에는 적당하지 않은 물이 찼다. 점점 숨이 막혔다.
코에 산소줄을 꽂았다. 손가락에 산소포화도 기계를 꽂았다. 내 몸에 산소가 줄어들면 기계에서 삐삐하는 알림음이 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지난여름 물속에서 들었던 이명이 생각났다.
작년 여름 세부에서 스쿠버 다이빙 체험을 했다. 그 여름에도 나에게는 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호흡법을 배우고 산소 장비를 차고 잠수를 했다. 얼마 간은 숨을 쉬지 않아도 물속에서 견딜 수 있었지만 금방 숨이 찼다. 배웠던 호흡법을 시도했지만 익숙하지 않아 점점 숨이 막혔다. 그날 처음으로 숨을 쉬지 못해서 죽는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생각했다. 귀에서는 삐삐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산소포화도 기계의 알림음을 들으면, 그때 바닷속에서 들었던 이명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