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캐피털(VC, Venture Capital)은 사업 실패 위험이 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자본으로 투자 대가로 지분이 주어지기 때문에 상환 의무가 없고 투자 실패의 책임이 오롯이 투자자에게 귀속된다. VC는 스타트업 창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로 ‘투자 → 회수 → 재투자’의 사이클을 통해 창업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 형성에 기여한다. 특히 기업이 운영을 주도하는 VC를 ‘기업형 벤처 캐피털(CVC, Corporate Venture Capital)’로 구분해 부른다. 일반 VC가 재무적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면 CVC는 재무적 목적 외에 투자 기업과의 사업 협력 및 시너지 창출 등 전략적 목적도 함께 추구한다.
VC 시장의 발달 정도는 스타트업의 창업 및 회수(exit)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에 국가별로 시장 발달 정도나 규모가 다 다르다.
첫째, 스타트업 창업이 많지 않은 나라는 VC 시장 발달이 미성숙 상태이고 규모도 작다. 투자할 대상이 적은데 투자 자금이 유입될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는 우선 정부가 자금을 투입해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정부의 투자 자금이 VC 시장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의 이스라엘이 대표적 사례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에는 VC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요즈마 프로그램(Yozma Program)’을 5년간 한시적으로 운용한 결과 창업이 활성화되면서 VC 시장도 활성화되었다. 최근 ‘스타트업의 불모지’로 불리던 일본도 2021년 8천억 엔 수준인 스타트업 투자 금액을 2027년 10조 엔으로 늘리기 위해 정부 산하 기구의 공적 자금 투입을 강화하고 있다.
둘째, 스타트업 창업은 물론 회수가 활발한 나라는 VC 시장의 민간 자본 비율이 높아지고 재원도 다양해진다. 세계 최대 VC 시장인 미국의 경우, 전체 스타트업 투자 금액에서 CVC 비율이 30~50% 수준일 정도로 CVC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1]. 이는 미국 스타트업 회수의 90% 정도가 M&A를 통한 회수인 것과 연관이 있다. 또한 일반 VC에서는 퇴직연금 등 연기금의 출자 비율이 40% 정도로 가장 높아 연기금이 핵심적인 자금원 역할을 하고 있다[2]. 이처럼 대기업, 연기금 등 자금력을 보유한 기관의 VC 시장 참여는 VC 시장을 활성화하고 안정성을 제고한다.
셋째, 스타트업 창업이 활발하고 유망 스타트업이 많은 나라에는 해외 VC의 유입이 증가한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의 경우, 스타트업 투자 금액의 75~80%는 해외에서 유입된 자본이다[3]. 경제 규모가 작더라도 스타트업 창업이 활성화되면 투자 자금은 해외에서라도 충분히 공급될 수 있다.
VC 시장 육성은 창업 및 회수 활성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스타트업 창업이 활성화되고 투자금의 회수가 활발히 이뤄진다면 자연스레 투자 자금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VC 시장 육성을 위해서는 투자 자금의 공급을 촉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투자 대상, 즉 스타트업의 투자 매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딥테크 등 유망 분야 스타트업의 창업 촉진, 회수(exit) 활성화, VC 시장 육성은 서로 유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VC 시장의 육성 방향이 명확하므로 이를 위한 법적, 제도적 여건들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현재 한국 VC 시장은 모태펀드[4] 등 정책금융의 역할이 크고, 시장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아 중∙후기 단계의 스케일업 지원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5]. 따라서 VC 시장 참여자 기반을 다변화하고 공급을 양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업 유보금이 창업 생태계로 유입될 수 있도록 CVC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현재 전체 스타트업 투자액에서 CVC가 차지하는 비율은 해외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이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스타트업 투자액에서 CVC의 비율은 19%에 불과해 미국 49.5%, 일본 45%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6]. CVC의 투자 활성화는 민간 자본의 스타트업 투자 확대라는 재무적 측면 외에도 일반 기업과 스타트업의 상호 협력이라는 전략적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한국 기업들도 스타트업 M&A 등을 통한 비유기적 성장(inorganic growth)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CVC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M&A 및 CVC 관련 규제를 적극 완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연기금, 퇴직연금 등 자금 규모가 큰 민간 출자자의 시장 참여 확대를 촉진해야 한다. 현재 연기금, 공제회 등이 VC 시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미국 등에 비하면 아직까지 전체 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은 편이다. VC 시장의 자금 공급 확대 및 안정성 제고를 위해서는 연기금, 퇴직연금 등의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
셋째, 해외 VC의 한국 투자를 적극 촉진해야 한다. 해외 VC의 투자는 자금 공급의 양적 확대는 물론 한국 창업 생태계의 글로벌화 및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2023년 기준 전체 스타트업 투자에서 해외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은 2.1%에 그치고 있다. 이는 싱가포르 84%, 영국 74%, 독일 66%, 중국 12% 등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7]. 해외 VC의 한국 투자가 촉진될 수 있도록 규제의 간소화 및 일원화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 참고 자료 >
[1] 김꽃별, 빅지환(2023). 스케일업을 위한 스타트업 생태계 국제비교 및 진단. Trade Focus, 2023-08.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2] 김석관 외(2019). 벤처케피탈의 기원과 제도적 진화에 대한 한∙미 비교 연구. 정책연구 2019-14.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3] Israel Innovation Authority. The State of High-Tech. 2023 Annual Report.
[4]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fund of funds)를 의미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정부가 민간 VC에 출자하기 위해 조성한 펀드를 말한다.
[5] 박용린(2022). 모험자본 공급 촉진방안. 자본시장연구원
[6] 벤처기업협회(2024). 일반지주회사의 CVC 규제 완화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합니다. 성명보도자료(2024.10.17)
[7] 진달래(2025). 글로벌 벤처투자 유치 현황과 개선방안. 나보포커스 86호. 국회예산정책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