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8년 7월 불공정 무역 관행에 의한 피해를 이유로 총 34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 818개에 대해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제재를 시작하였다. 2019년 5월에는 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를 거래 제한 기업으로 지정함으로써 대중 기술 제재가 본격화되었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도 대중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바이오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에서 중국 기업 배제를 추진하면서 무역 제재로 시작한 양국 간 갈등은 기술 제재, 공급망 제재로 확대되었다.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재차 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미∙중 관계가 이렇게 대립 일변도는 아니었다. 당시까지 양국은 협력과 대립이 공존하는 다소 불안정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미국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협력해 이익을 추구했지만, 군사∙안보적으로는 동맹국과 협력해 중국을 견제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도 협력보다는 대립 관계가 심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중국에 자본을 투자하고, 중국은 소비재를 저렴하게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동안 양국은 상호보완적 윈윈(win-win) 협력이 가능했다. 그러나 중국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시작하자 중국은 미국에게 더 이상 윈윈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제로섬 경쟁의 상대로 변했다. 인공지능, 반도체 등 첨단기술은 4차 산업혁명은 물론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이므로 미국 역시 반드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격화되는 미∙중 갈등은 본질적으로 기술 패권 다툼이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굴기(技術崛起)’를 견제하기 위해 첨단기술에 대한 대중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세계 최강국 도약이라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해 첨단기술 확보가 절실하다. 중국몽 실현의 최우선 과제가 소비재 양산에 기반한 양적 성장에서 첨단기술에 기반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첨단기술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중국과 이를 저지하고 첨단기술의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간 다툼이 현재 진행되는 미∙중 갈등의 본질이다.
미국은 아직 첨단기술에서 중국에 뒤처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중국이 앞서 나가기 시작하는 이른바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1]’가 도래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 미국의 강력한 대중 규제는 ‘스푸트니크 모멘트’의 도래를 어떻게든 막겠다는 전략적 행보인 것이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당시 미국은 과학기술 전반에서 자신들이 소련보다 월등히 앞서 있으며, 소련은 아직도 농업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소련이 83.6kg나 되는[2] 위성을 미국보다 먼저 궤도에 올린 것이다.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공위성 발사’라는 획기적 성취를 얕잡아 보던 소련이 먼저 달성했으니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미국인들은 실상 자신들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당혹감에 빠졌다. 더구나 위성을 우주로 운반했던 로켓에 위성 대신 핵폭탄을 탑재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Inter- 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이 될 수 있으므로 핵전쟁의 공포가 미국 사회를 엄습했다. 미국 정부는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3]’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했다.
첫째, 1958년 우주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항공우주국(NASA)[4]을 대통령 직속기구로, 첨단기술 혁신을 지원하는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5]을 국방부 산하기구로 설립했다. 당시 NASA의 주된 목표는 소련보다 먼저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1960년대 중반에는 연방정부 예산의 3~4%가[6] NASA
에 투입되었다. 마침내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 DARPA는 GPS[7], 음성인식, 인터넷 등의 첨단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미국의 기술 패권 강화에 기여하였다.
둘째, 기초 학문 교육을 강화하였다. 수학, 과학 분야에서 소련에 뒤진 가장 큰 이유는 교육 때문이라는 인식 하에 1958년 교육이 국가 안보에 필수적임을 명시한 국가방위교육법(NDEA)[8]이 제정되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9] 교육 강화, 연방정부의 학자금 지원 등이 시행되었다.
셋째, 연방정부가 R&D 예산을 과학기술 연구에 대거 투입했다. 1962~68년 연방정부 예산에서 R&D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9~12% 수준을 유지했다[10]. 당시 연방정부는 미국 전체 R&D 투자액의 70% 가까이를 부담했는데, 이는 미국 제외한 전 세계 전체 R&D 투자액보다 많은 것이었다.
미국은 연구 인프라, 기초 교육, 인력 등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스푸트니크 쇼크를 극복하고 기술 패권을 되찾아 왔다. 그리고 당시 일련의 대응은 현재 미국의 견고한 기술 리더십 및 스타트업 생태계의 밑거름이 되었다. 궁극적으로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의 기술 패권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미∙중 갈등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 결말이 21세기 기술 패권의 향방을 결정할 것임은 분명하다.
미∙소 우주 경쟁(1960년대) vs. 미∙중 기술 패권 경쟁(현재)
체제가 다른 두 강대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나, 당시와 지금 상황은 매우 달라 미∙중 갈등의 결말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첫째, 냉전이 심화되면서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은 경제적으로 거의 단절되었으나, 미국과 중국은 갈등이 심화되기 전까지 상호 간 최대 교역상대국일 정도로 경제적으로 밀접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 분리)을 추진하고 있으나, 미∙중 간 완전한 디커플링은 사실상 어렵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코콤(COCOM,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켜 소련에 대한 다자간 수출 통제를 엄격히 시행했으나, 지금 실질적인 대중국 다자간 수출 통제 기구는 없다. 그래서 미국은 코콤과 유사한 다자간 수출 통제 체제 구축을 원하나 동맹국들의 이해관계가 너무나 복잡하다. 과거 소련을 봉쇄했던 것처럼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기는 쉽지 않다.
셋째, 1960년대 우주 경쟁에서는 미국이 후발 주자였지만, 지금의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중국이 후발 주자이다. 후발자는 선발자를 따라잡기 위해 총력을 다하기 마련이다. 지금 중국은 ‘기술 굴기’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스푸트니크 쇼크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대대적인 투자를 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처럼 다양한 측면들을 종합해 보면, 미국이 현재 전개되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과거 스푸트니크 쇼크를 극복하고 우주 경쟁에서 승리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임을 알 수 있다.
< 참고 자료 >
[1]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면서 우주기술에서 미국을 앞서 나갔던 것처럼, 기술 경쟁에서 후발주자가 선두주자를 추월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2] 위성이 무겁다는 것은 로켓을 탄도미사일로 전용할 경우, 로켓에 더 많은 폭탄을 탑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1958년 2월 1일 발사된 미국 최초의 위성 익스플로러 1호의 무게는 스푸트니크 1호의 1/6 수준인 14kg이었다.
[3]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로 미국 사회가 받은 엄청난 충격을 뜻한다.
[4]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5]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1958년 설립 당시 명칭은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ARPA)였다.
[6] 1966년 NASA 예산(59억 달러)이 연방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4%로 역대 최고였다. 근래 비율은 0.4~0.5% 수준이다(출처: Wikipedia).
[7] Global Positioning System,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
[8] 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
[9]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10] 2022년 비율이 3%임을 고려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이다. (출처: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